이동순, 시집 ‘마을올레’ 출간…노인들과 나눴던 얘기와 가락

이동순 시인이 열여섯번째 시집 ‘마을올레’를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대구 KBS TV ‘행복발견’의 ‘마을 올레’ 진행자로 다니면서 떠오른 시상들을 정리한 것이다.

시인은 15개월 동안 방송 진행자가 되어 경상북도의 마을 63곳을 매주 탐방했다. 말로만 듣던 텅 빈 농촌, 노약자들만 남아있는 마을회관에서 현지주민들과 손을 맞잡고 가슴 속에 갈무리된 이야기를 들었다.

눈물과 웃음, 애달픔과 처연함 등 고단하고 힘겹게 살아온 민초(民草)들의 사연을 온몸으로 껴안았다. 방송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량 뒷좌석에서 시인은 시작품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58편의 시가 오롯이 ‘마을 올레’에 담겼다.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드러난 삶 이면에 침묵하고 있는 스토리다. 쇠락해가는 농촌 공동체 속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꽁꽁 감춰두었던 삶의 ‘내력들’이었다. 시인의 눈에 그것들은 ‘행복’이라고 말해질 것들이 아니었다. 마을 공동체가 기억하는 것들은 크고 작은 상처였다.

그럼에도 굴곡진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마음의 바닥에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놓는 사람들 앞에서 이동순 시인은 뜨겁게 호응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연을 담아 시집을 완성했다.

이동순 시인

시인 이동순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다양한 삶의 이력과 풍경을 조곤조곤한 시어로 담백하게 드러내 왔다. 이번 시집에도 등단 40년을 훌쩍 넘긴 시인의 무심한 듯 섬세한 눈길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한편 시인은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평론가, 방송 진행자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피니언타임스=박형재]

마을 둘러싼
세 개의 산봉우리를
솥 다리로 생각한 이 고장 조상들
마을 이름 솥골의 유래도
그렇게 생겨났다
경북 문경시 마성면
산 좋고 물 좋은 솥골에서
양조장 만들어
세계 최고의 막걸리 빚겠다는
탁주계 숨은 야심가
솥골의 복만 씨
막걸리 상표는 자기 이름 뒤집어
만복이라 붙였다
받으시요 받으시요
만복주 한 잔을 받으시요
마을회관에서
오늘은 배추전 부치고
돼지족발에 콩나물 삶아 무치고
갓 무친 겉절이 새우젓에
상다리가 휘어지는구나
외롭게 살아온 늙은이들 모여
틀니 털럭거리며
모처럼 맛있는 음식 나누는구나
늘 이런 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꼬
-솥골 전문

목화다방을 아시나요
상주 은척 면소재지 장터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숨어서 빠끔히 내다보는
간판 하나가 걸려 있는데요
거기 쥔 마담은
한 자리에서 사십 년 넘도록
시골다방을 지켜 왔대요
봄바람 가을비가 몇 번이나 지나갔나
어느 틈에 회갑을 넘겼다며
배시시 웃는 마담 눈가에
잔주름이 오글오글 돋아나네요
난로 옆에는
칠순이 넘어도 여전히 건달기 가득한
은척 영감님들 서넛
고스톱 치느라 옆 돌아볼 틈도 없는데
국자도 주전자도
벽에 걸린 액자도 불알시계도
모두 모두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앉은
골동품들이랍니다
상주 은척 목화다방 소파에 앉으면
나도 저절로 골동품이 됩니다
-목화다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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