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어디 사채라도 쓴 거야? 이쯤되면 야반도주 급인데?”

6월 한 달에만 제주도를 2번 다녀오고, 후쿠오카 여행까지 마치고 온 나에게 친구가 장난스럽게 건넨 말이다. 30일 동안 서울에 머문 날이 19일 뿐이니 친구의 농담도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

4개월 동안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다. 한 달에 20만원도 안 쓰고 모조리 통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돈이 조금씩 모일 때마다 제주도 항공권, 후쿠오카 항공권을 차곡차곡 결제했다. 최근에 내가 아등바등 돈을 번 이유는 단지 항공권을 위함이었다. 그리고 여행에 다녀와서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생활비를 남겨두는 것.

©픽사베이

요즘 들어 나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인생은 단 한번뿐’이라고 외치는 욜로(YOLO)족이 그들이다. 아프리카로 훌쩍 배낭여행을 떠나거나 직장을 내던지고 ‘You only live once’라고 말하는 사람들.

나는 엄밀히 말해 욜로족은 아니다. 그들처럼 지금, 여기, 단한번의 삶을 즐길 여유도, 훌훌 털고 떠날 용기도 없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고, 한 번의 거대한 탕진을 위해서 1년 중 반년을 노역하는 마음으로 버틴다. 가끔씩 ‘나는 왜 쓸데없이 여행을 취미로 가져 생고생일까’ ‘금수저들이나 욜로지, 흙수저는 허세다’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자책할 때도 있다.

이따금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3박4일의 여행 때문에 한 달의 고통을 참아내고, 며칠의 즐거움을 위해 훨씬 많은 날들을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간다. 거울을 보며 문득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괜스레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런데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보면 무언가 굳건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픽사베이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다. 대학에 느지막이 입학해 동년배들과는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유럽 여행을 위해 1년의 휴학을 거치고 나니 친구들과 시간 격차는 더 커졌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이 결혼을 했고,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도 결혼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직장생활이 3년차, 6년차인 친구들도 있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차를 산 친구도 있으며 결혼 자금을 다 모았다는 친구도 있다.

글을 쓰던 선배들은 슬슬 자리를 잡아야 할 때라며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있었다. 다들 안정과 미래를 얘기하면서 씁쓸하게 읊조렸다. “나이를 먹었나봐. 마냥 미래가 즐겁지 않고, 이젠 왠지 어른 흉내라도 내야할 것만 같아.” 나는 그들 앞에서 “아냐! 우린 아직 젊어! 나이의 앞자리가 아직 2잖아!”라고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몇 번이나 멈춰 불안에 떨리는 몸과 마음을 부여잡았다. 나도 불안했다. 정말 많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사회적으로 이룬 것은 없었고, 통장 안에는 나의 작은 일상을 책임질 숫자만 찍혀있었다. 어른이 되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서 내일을 설계할 작은 방 한 칸을 갖고 싶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임은 점점 커져가는데 나의 세계는 점점 작아졌다. 거듭된 실패와 성공한 어른들의 채찍질에 매일 움츠러들었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 세상이 어려워 머뭇거렸는데, 무서운 교관 얼굴을 한 어른들은 단지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철이 덜 들었기 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어렵게 발을 내민 사회생활도 버겁긴 마찬가지였다. 개인 의견을 말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면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 취급했다. 스스로를 깎아내고 억누르고 모두와 비슷하게 우울한 표정을 지을 때야 동료로 인정해줬다. 나는 나로 살고 싶은데, 자꾸만 숫자를 들이대며 “봐봐, 이게 네 나이야. 너의 나이 대에는 말이다…”라며 누가 정했는지 모를 수많은 퀘스트들을 내게 안겨줬다. 취업, 결혼, 주택청약저축, 자기계발적금, 노후준비. 손 안에 쥐어진 낯설기만 한 수많은 문제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것들을 바닥으로 퍽, 떨어뜨렸다. 그리고 항공권을 결제했다.

©픽사베이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한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도 많았고, 내가 알던 상식과 규칙이 매일 무너졌다. 내가 받들어야 했던 문제들이 사라졌다. 하루하루가 생존과 맞닿을 때도 있었고, 나를 부숴야 할 때도 있었다. 나의 삶을 능숙하고 노련하게 만들려고 했던 일상과 달리 여행을 할 때에는 매일 낯선 것을 배우고 익히며 도전할 수 있었다.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서울 땅 위에서의 나를 떠올렸다. 조급하게 다이어리를 정리하던, 미래를 위해 월 별로 계획을 세우던 나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며 새카만 불안에 잠식되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가 거기 있었다.

나는 많이 유약하다. 남들이 지적하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성공에 대한 욕심도 있고,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지만 그렇게 발걸음을 맞추다보니 내 속도가 얼마였는지 매일 잊었다. 하고픈 것 대신 해야만 하는 것들로 하루가 채워졌다. 가뜩이나 생존과 경쟁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서 나는 매일매일 형체없는 거대한 불안에 잠식당했다. 그래서 떠나기로 한 것 같다. 턱 끝까지 불안이 차오를 때면 ‘자, 지금이야!’하고 비행기를 탔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세상에 몸을 기대고, 또 나처럼 여행길에 오른 동료를 보면서 질문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나갔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단 한번뿐인 삶을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 결핍된 것들을 채워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불안에 먹히지 않고, 제 속도를 찾아 걷기위해 일상과 멀어지는 것. 그리고 충만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단지 그뿐이다.

몇몇 친구들은 꼭 그렇게 큰 돈 들여 떠나야 하냐고 묻는다. 차라리 그 돈으로 자기계발을 하거나 많은 책을 읽으면 되지 않냐고. 나는 그런 말에 꽤나 성심성의껏 고개를 주억거린다. 가끔은 정말 피곤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이나, 부족한 여행 경비를 위해 스트레스 받으며 일할 때면 ‘그래, 이젠 좀 그만 나가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돈이 모이면 어디로 떠나볼까 하며 설렌다. 사주에 역마살을 없다고 하는데 자꾸만 바깥으로 도는 이유는 나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 때문일까. 남들보다 조금 더딘 속도를 가졌기에 내 속도를 찾기 위해 다양한 세상을 보고픈 것 같다.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