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고: 교육개혁 #1]

[오피니언타임스=서용현, Jose] 일자리 추경이 정치적인 기(氣)싸움이 되고 있다. 이제 문제는 추경(追更)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승패 문제로 변질됐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중장기적인 국가 대계(大計)의 측면에서 차분하게 접근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토론을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이슈를 보지 않고 흑백론적 관점에서 문제를 다룬다. 우린 항상 그래 왔다. 그리고 실패해 왔다.

특히 “추경 말고는 대안이 없는지”의 문제는 묻혀버렸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 추경은 일자리 문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도, 최선의 대안도 아니다. 추경을 찬성, 반대하는 여야 의원들에게 아래에 관해 묻고 싶다.

©행정자치부

1. 이 문제가 그렇게 서둘러 처리해야 할 문제인가? 이런 중요한 문제일수록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시각에서 ‘두 번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아닌가? 이 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계기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선물인가? 아니면 우리의 고질병인 ‘빨리빨리’와 ‘묻지마’ 정책 드라이브의 부활인가? 우리 국민이 졸속하게 추진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이해하고 납득했던가? 마찬가지로 종국적으로 추경을 부담할 국민이 일자리 추경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가? 4대강 사업에 대해 문 대통령이 정책감사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한다. 하늘에 빌고 싶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일자리 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4대강이 되지 않기를…

2. 추경 이외의 대안은 없는가? 다른 부문의 예산·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으로는 안 되는가? 정부의 예산·인력에 낭비와 비효율이 많다는 것은 국민이 공감하는 것이다. 그런 낭비·비효율을 줄여서 생긴 예산·인력을 일자리 사업에 돌리고 부족한 만큼만 추경을 신청한다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예컨대 ‘규제’를 전문으로 하는 정부 부처(예: 교육부)에서는 ‘과잉 인원’이 있어서 ‘과잉 규제’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예: 교육부의 규제 때문에 학교 교사가 과도한 행정업무 부담을 지는 것) 이러한 규제 부처의 과잉 인원을 추경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중장기적으로 배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에 의해 추가 예산 소요를 줄이고 공공 서비스를 오히려 제고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지 않은가?

3. 과거 <작은 정부>를 표방한 정권에서도 정부의 규모는 계속 팽창되어 왔다. 그런데 작은 정부를 표방하지 않은 금번 정권에서 정부 팽창의 가능성은 더욱 크다. 이번 추경이 선례가 되면, 각 부문·정부기관에서 자신들의 사업이 시급함을 내세우며 예산 증액을 주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의 한국은 욕구 과잉의 나라다. 복지의 각 부문별로 욕구가 분출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따라서 ‘예산·인력의 순(純)팽창’보다는 가급적 ‘예산·인력의 이동’에 의해 문제를 접근한다는 원칙을 세워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즉, 시급한 예산 용도가 있으면 이를 충당할 예산 절감수단을 함께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의 자세가 아닐까?

©픽사베이

4. 공무원을 증원하면 일자리가 늘어날까? 단기적으로는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생산성(生産性)이 낮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공무원 증원은 국가 예산을 생산성있는 민간부문에서 생산성없는 공공부문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생산성을 떨어트리고, 성장의 침체를 초래하고, 나아가 민간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자리 추경으로 민간경제로 갈 예산이 줄어듬에 따라 민간 고용 감소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 만들기는 도루묵 아닌가? 이런 일자리 만들기가 가능하다면, 모든 정부가 실업자를 생산성이 없는 저소득 공무원으로 만들면 되지 않는가? 이것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시도한 것이다. 그들은 비참하게 실패했다.

5. 나는 정부가 작위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민간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도록 ‘배경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람과 기업이 신바람이 나서 ‘의욕을 가지고’ 일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경제의 자유성과 자율성을 높이면서도 불공정과 독점을 방지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새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바람직하다.

6. 일자리 만들기는 정치적으로 유력한 포퓰리즘적 정책 수단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재원의 최적 배분”이라는 경제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원 대상이 될 일자리는 공무원이 고른다. 우린 이런 문제에 관해 공무원을 신뢰하는가? 30년 간 공무원으로 근무한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옛날에 농민들이 농업 당국의 말을 듣고 경작할 작물을 선택하면 십중팔구 망했다. 이런 경제적 선택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일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다른 데에 있다고 본다. 그것은 <교육>이다. 지금은 두뇌생산의 시대다. 그런데 우리 교육이 암기교육, 주입식 교육에 치중하여 젊은이들의 머리가 나빠지고 역량도 없게 되어 그들의 쓸모가 없어진 것이 일자리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일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교육혁명’에서 찾아야 한다. 즉, 젊은이들이 머리가 좋고 창의성이 있게 만들면 된다. 박근혜 정권 당시의 창조경제도 유사한 이유로 실패했다고 본다. 창조가 안 되는 이유는 암기교육·주입식 교육으로 국민들이 돌대가리가 되었기 때문인데 이 근본원인은 도외시하고 창조경제를 정책으로 밀어 부쳤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육혁명’은 자사고, 특목고를 없애는 수준이 아니다. 시험을 아예 없애서 학생들이 암기공부·주입식 공부를 하지 않고 ‘생각하는 공부’, ‘실력과 실천 위주 공부’를 하도록 유도해 보라. 그래서 머리 좋고, 씩씩하고, 쓸모 있는 학생들을 만들면 이들을 고용할 회사들은 많을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인 일자리 대책이다.

*시험을 없애는 방안 및 대학입시제도 전폭 개혁안 등 교육혁명의 구체적인 비전에 관해서는 후속 칼럼에서 세부적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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