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80여일 지난 시점에서 질문을 던져 본다. 이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외부와 내부 중 어디일까? 물론 내부 역량과 외부 여건 둘 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문(愚問)이다. 그럼에도 진짜 문제는 자유한국당 등 개혁에 저항하는 외부 세력이 아니라 내부 역량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강하게 들고 있다.

얼마 전 자신을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이 “이제 문재인 정권도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모양”이란 다소 과격한 제목의 글을 SNS 대화방에 올렸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군자 할머니(91) 빈소에서 민주당 송영길·손혜원 의원이 밝은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사진도 함께 실었다.

평생 한을 못 풀고 별세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상가에서 이들이 보인 부적절한 처신은 그가 말한 대로 “아직도 승리에 취해, 권력에 취해 헤어날 줄 모르는” 것이라고 해석할 만 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는 사실 그 이틀 전 국회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두 의원의 행동이 돌출성인 데 반해 이것은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것이었다. 이름 하여 ‘추경 정족수 미달 사태’였다.

추경 통과는 문재인 정부가 제1국정과제로 내놓은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국회에 제출된 지 45일간 진통 끝에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첫 추경안 처리였다. 그러나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불발될 위기를 겪다가 가까스로 통과했다.

민주당에서 소속 의원(120명) 5분의 1이 넘는 26명이 대거 불참했기 때문이다. 26명 가운데 24명은 해외에 있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을 찾아가 읍소하고 한국당 의원 일부가 표결에 참여함으로써 정족수를 채웠다.

사태 자체는 한국당 의원들이 표결 직전 집단 퇴장함으로써 빚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이 교란 전략을 썼다고 해도 민주당이 면책 받을 수는 없다. 집권여당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정족수 단속을 했어야 했다. 정치 관측통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이렇게 물렁하게, 프로패셔널 답지 못하게 대처한 건 어째서였을까? 앞서 누리꾼이 말한 대로 “아직도 승리에 취해, 권력에 취해” 있기 때문일까. 더 나쁜 건 그 뒤로다. 민주당은 긴장감이 떨어졌다느니, 당 기강 쇄신 작업을 하겠다느니 시끌시끌하더니, 불참 의원들에 대한 징계는 당 대표의 서면경고 정도의 가벼운 수준이라고 한다.

©청와대

또 하나 내부 역량 문제로 지적할 것은 증세에 대한 태도다. 절대 부족한 복지를 확대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증세, 그것도 포괄적 증세를 논의해야 할 때다. 그러나 이 정권은 어정쩡하기만 하다.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촛불민심의 힘으로 출범한 정부가 증세에 대해 너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그동안 표를 잃을까봐 증세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을 ‘적폐’라고 규정했다.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1순위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다. 그런 만큼 인기영합적 행태를 버려야 함에도 증세를 다루는 태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복지 재원 마련책으로 증세 아닌 다른 길을 택했다. 심지어 담뱃값을 2000원이나 올려 지난해만 세수를 5조원 더 걷었다. (여담이지만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이 담뱃값을 현행 4500원에서 2500원으로 다시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서라며 대폭 인상했다가 정권을 내놓자마자 선심 쓰듯 담뱃값을 내리자는 건 후안무치다. 한국당은 이 정권에 대해 지금도 시대착오적 종북몰이를 일삼고 있다. 나는 이런 정도 실력인 한국당보다는 민주당 내부의 취약성이 더 중대한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세금폭탄’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 개개인이 더 무거운 세 부담을 지게 될 것이란 논리였다. 한국당은 이번에도 세금폭탄론을 펴고 있다. 사실 증세는 정부가 아무리 설명을 잘 해도 지지율을 떨어뜨릴 성격의 문제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라면 감수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국가’란 ‘네모난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이런 말을 했다. “박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도 우리가 최소 10년은 더 집권해야 대한민국이 반석에 올라간다. …민주당은 믿을 수 없으며 정권을 맡길 수 없다.” 그 정권은 탄핵으로 무너졌다. 붕괴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부의 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민주당은 이런 기고만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때로 지피보다 지기가 더 어렵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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