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정말 덥다. 한여름 삼복더위라는 표현으론 영 마뜩잖다,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를 비롯해 혹서(酷暑), 폭염(暴炎), 염천(炎天)같은 한자말이 실감나는 무더위다.

한밤 새벽까지 이어지는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니 심신이 찌뿌둥하다. 누워도 견디기 어렵고 일어나도 참기 힘들다. 부채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고 에어컨 선풍기를 계속 가동하려니 전기세와 냉방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나 싶다.

해마다 그해 여름이 유독 덥다고 느끼는 것은 지난 더위를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올여름 더위는 기상 관측 통계 수치가 구체적으로 폭염의 정도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7월 말~8월 초 성하(盛夏)전부터 일찌감치 밤에도 최저 기온이 섭씨 25도 이상인 열대야, 하루 최고 기온 30도 이상의 날씨가 전국 각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올 여름이 내 인생의 최고 무더위”라는 느낌이 과장만은 아닌 듯 싶다.

대구 현대백화점 앞에 설치된 더위를 표현한 조형물들. ©YTN 방송 캡처

여름이면 아프리카만큼 덥다는 의미에서 지역명과 아프리카를 합성한 ‘대프리카’라는 별칭을 얻은 대구에선 도심 백화점 광장에 무더위를 익살스럽게 상징한 ‘핫 아트’가 등장했다. 건물 외벽과 도로 위에 노른자가 볼록 튀어나온 대형 계란프라이와 녹아내린 듯한 러버콘(고깔 모양의 교통안전시설물)같은 조형물이 역발상 아이디어로 시선을 모았다.

연일 후텁지근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어디서든 ‘나만의 여름나기 노하우’가 화제다. 요즘처럼 더울 때는 “에어컨 빵빵 트는 회사 사무실이 집보다 낫다”는 직장인. “집에 혼자서 에어컨 선풍기를 계속 사용하려니 전기세가 걱정”이라며 “냉방 잘 된 백화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는 주부들. 학생, 취업준비생, 퇴직자는 집 부근 카페나 공공도서관를 피서지삼아 노트북, 책을 펴 들고 더위를 쫓는다.

‘낮 동안 야외활동 자제’등을 일깨우는 폭염주의보가 전해지는 날이면 더운 집을 나서 시원한 곳을 찾는다는 이들도 있다. 평소 집 방에 들어박혀 지내는 ‘방콕족’조차 눈 뜨면 오늘의 피서를 궁리한다니.

장시간 버틸 수 있는 피서 공간, 주머니 부담 덜하면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맛집 발굴도 시원한 여름나기의 노하우다. 자연속 정자에서 마음 맞는 벗과 더불어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견뎌내던 유두음(流頭飮)의 풍류는 이즈음 냉방된 실내에서 대형 눈꽃빙수를 나눠 먹는 ‘쿨 디저트’로 이어진다.

올 여름의 히트 상품은 휴대용 미니 선풍기가 아닐까. 거리서 손에 ‘손전화’보다 ‘손풍기’를 챙겨든 사람들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지난 3일자 한 조간신문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내린 2일 거리 풍경으로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에 대고 더위를 식히는 남녀노소의 사진이 실렸다. 여름 여행의 준비 목록이며 등산길에도 ‘손풍기’가 강세다.

여름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겨울에는 새해 책력을 선사했다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의 관행은 이즈음 젊은 층으로선 결코 실감할 수 없는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한때 익숙했으나 이젠 찾아보기 힘든, 그때 그시절의 여름 풍경을 떠올려 본다. 한여름 열기 속에서도 보는 이로선 시원한 여름 볼거리였던 정겨운 장면들이다.

가는 등나무 덩굴을 엮어 만든 등거리 차림으로 집 밖에서 하릴없이 부채질하며 장기 두던 동네 아저씨, 단아한 한복 차림에 양산을 쓰고 외출하던 어머니들… 인기드라머 ‘응답하라 1988’에도 등장하던 골목길 나무 평상의 역할을 아파트단지 편의점 파라솔이 대리하고 있는 것일까.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 놓고 갔어요’. 동요 ‘흰 구름’의 노랫말처럼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면 들렸던 시골 친가 외가, 키 높은 미루나무가 듬성듬성 서있고 귀가 먹먹할만큼 울어대던 매미소리, 푸른 하늘에 흰구름의 어우러짐이 경이롭던 한여름의 개울가.

사실 더워야 마땅한 계절에 덥지 않기를 바라다니. 덥다 덥다며 찬 것과 시원한 곳만 찾으며 더위를 쫓느라 찌푸리고 짜증내기 보다 무언가 즐겁고 보람있는 일과 더불어 더위를 견뎌내야할 것 같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올해는 8월 24일. 더위가 고비를 넘어 날씨가 선선해진다는 처서를 기다리며 심신의 느긋함을 스스로에게 일깨워본다.

“요즘은 뭘 먹어도 별 감흥이 없다”는 엄마, 한번 봐야지 벼르기만 하던 지인에게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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