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드넓은 대학교정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관계를 이어오는 것은 인연이라는 말 외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젊은 남녀사이처럼 불꽃이 튈만한 나이도 아닌 60을 넘긴 남자들 사이에, 그것도 외국인과의 사이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아내가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던 첫 해, 강의날이면 차를 태워다준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서 기다렸다. 교수연구실에만 머물러 있기엔 답답해서 교정에 나가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다. 서울대에 다닐 당시 옛 모습이 몇몇 건물에 남아있어 빛바랜 흑백사진에 색깔을 입히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젊은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쉽게 다가가긴 망설여졌다.

그러던 중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노년의 외국인 남자를 보고 옆에 앉아 이야기를 걸었다. 서울대경제학부에 정교수로 와있는 교수였다.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서로에게 관심이 생겨 그 이후로 만남이 이어졌다.

그는 이듬해 정년퇴직을 하고 어느 사립대에 가서 1년을 더 가르친 후 우리나라를 떠났다. 그리스 출신으로 호주에서 교수를 하다 서울대에 와서 10년 가까이 가르쳤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커 경제를 비롯해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떠난다는 말처럼 교류가 끊어졌다.

한동안 잊고 있던 그가 생각난 것은 금년 여름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여름학기 강의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8월초에 돌아갈 예정이라 지난주 작별만남을 가졌다. 모듬전을 좋아한대서 봉천동에 있는 허름한 집에서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경제가 그리스처럼 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그런 글을 쓸테니 언론에 실어보겠느냐는 제의도 했다. 우리나라 경제문제 말고 우리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비롯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새겨들을만 했다.

지적받으며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와의 대화 중에도 그의 지적은 이어졌다. 옆테이블에서 도시락을 시켜 반찬을 넣고 뚜껑을 닫은 후 흔들어 비비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고 물어봐 설명하던 중 도시락을 ‘lunch box’라 했더니 “저녁인데 왜 그렇게 표현하냐”고 지적했다. 도시락을 영어로 그렇게 부른다 했더니 꼭 그렇게 말해야하는지 생각해 보란다.

또 통화문제를 이야기 하다 중앙은행을 ‘central bank’라 하였더니 ‘reserve bank’라 불러야지 하며 지적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불러왔는데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적받을 때는 잠시 불편했지만 헤어지며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단어나 사고가 객관적으로 보면 고쳐야하는데도 그걸 스스로 깨닫기는 어렵다는 걸 새삼 배우는 기회로 여겨졌다. 다양성이 왜 필요한지를 실제적으로 깨우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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