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보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초등학생 독서논술 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아이들의 꿈을 물어볼 때가 있다. 꿈이 곧 희망직업은 아니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희망직업을 이야기한다. 꿈이 없다는 아이들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 중에 많은 아이가 크리에이터라고 대답한다. 크리에이터가 유튜브 동영상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흔히 유튜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업 직전까지 휴대폰을 놓지 않는 아이들의 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면 보통 둘 중 하나다. 게임을 하고 있거나 게임 해설 유튜버의 방송을 보고 있거나.

어떤 아이가 친구들과 찍은 영상이라며 보여주는데 그 영상에는 친구들과 몰래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깔깔대며 도망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아이는 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거라며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올해 중3, 중1인 내 조카들은 요즘 화장에 푹 빠져있다. 틈만 나면 화장 전문 유튜버의 방송을 들여다보고 화장법을 따라 한다. 어떨 땐 휴대폰을 고정해놓고 자신이 화장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한다.

예전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TV속에 자신의 모습이 나오기를 갈망했지만, 이제는 꼭 TV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내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유튜버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고, 몇만명에서 몇십만명까지 고정 구독층을 확보한 인기인들도 생겼다. 많은 아이들이 그런 유튜버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영상에 열광하며, 자신들도 그들과 같아지길 꿈꾼다.

그런데 요즘 인기 있다는 몇몇 유튜버들의 행각을 보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주유소에 가서 10원어치 주유를 해달라고 생떼를 쓰며 당황하는 주유원의 얼굴을 찍고 조롱한다. 빵에서 파리가 나왔다고 가게에 전화를 걸어 응대하는 여직원에게 쌍욕을 하며 억지를 부린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생방송으로 한밤 중에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중계하다 적발된 적도 있다. 얼마 전에는 한 모텔 객실에서 생달걀을 던지며 난장판을 벌이다 적발된 유튜버들이 거액의 손해 배상을 물게 됐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수많은 개인방송 틈에서 조금이라도 돋보이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와 방식을 택하는 유튜버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폭력과 조롱이 주로 자신보다 약자를 대상으로 가해진다는 데 있다. 10원 주유를 요구하며 황당해하는 주유원에게 모욕적인 막말을 하고, 여성들을 향해 쌍욕을 퍼붓고 뒤돌아서서 낄낄거리는 등 방송의 말초적인 재미를 위해 모욕당하고 피해를 입는 건 언제나 약자들의 몫이다. 많은 초등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이런 방송을 보면서 유튜버의 꿈을 키워가는 것도 큰 문제다. 아직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은 아이들이 이러한 방송에 자주 노출된다면 더 큰 혐오와 조롱과 폭력이 넘쳐나는 영상을 별다른 죄책감 없이 제작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최근에는 어떤 유튜버가 한 여성을 죽이겠다며 그 여성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방송으로 중계해 충격을 줬다. 유튜버의 방송 중에 남성들에게 비판적인 방송을 하는 여성 유튜버의 이름이 나왔고, 20만원을 주면 자신이 그 유튜버를 살해할 것이며 그 과정을 생중계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즉시 어떤 이용자가 20만원을 송금했고, 그 유튜버는 차를 타고 여성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생중계했다. 실제로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고 유튜버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잡혔는데, 경찰은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조성 혐의로 범칙금 5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쳐서 더 큰 논란을 낳았다.

단순 해프닝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심각하고 위험한 사건인데 경찰의 안일한 대처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초등학생과 청소년들이 비뚤어진 행태를 보이는 남성 유튜버들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는 현 상황도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이런 개인 방송이 인기를 끄는 건 어떤 이들에겐 그 영상들이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약자를 조롱하고 쌍욕을 퍼붓고 심지어 살해협박까지 하며 낄낄거리는 것은 전혀 재미있지 않고 재미있어서도 안 된다.

<철완 아톰>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는 이렇게 말했다.
“만화가는 무엇을 그려도 좋다. 단 하나만 빼고. 사람의 기본적인 인권을 해치는 거.”
그 어떤 재미라도 사람을 해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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