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웹툰 작가 광진의 작품 ‘이태원 클라스’에서 주인공 박새로이는 말한다.
“소신에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얼마 전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숲)’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조국에서 매국노가 되었단 소리를 들었다. 난징대학살을 자행한 일본군의 실태를 일본 작가가 써놓았기 때문이었다.

하루키는 논란에 대해서 긴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마디로 자신의 입장을 일축했다.
“내가 대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나의 소신뿐이다.”

우리나라에는 꽤나 많은 문학상들이 존재한다. 작은 월간지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서부터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어느 날 시인 송경동도 이런 문학상을 주최하는 곳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수상 후보에 올라왔다는 소식이었다. 주최하는 곳은 메이저 신문사였고, 상금의 규모 또한 3000만원이라는 거대한 액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SNS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상 자체가 부적절하고 그 말미에라도 내 이름을 넣을 수는 없다”
문학상은 미당문학상이었고, 그는 참여문학에서 20년을 넘게 활동해온 시인이었다.

소신이란 내비게이션을 가진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픽사베이

오늘 저녁에 내 동기 하나가 질문을 했다. 누군가를 위해 싸우거나,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은 존중을 받는데, 왜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면 욕을 먹는지에 대해.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능력이라고 대답했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은 때에 따라서 다를 거라 대답했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 옳은 길로만 걸어갈 순 없을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잘 찾아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소신’이라는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굳이 갈림길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헤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소신(所信)자’들.

그들에게 타협은 없다. 척박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매국노라는 비난을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들어도, 거대한 액수의 돈 앞에서도. 자신을 한없이 내모는 외부의 압박에서도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할 때가 있다. 어떤 칭찬을 받으려고 옳은 일을 행하는 것도 아니고 주목을 받으려고 움직이는 것도 아닌, 오로지 스스로의 믿음만으로 자신의 선택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오는 것이 찢어질듯한 가난과, 조국에게서 배신자라 불리는 결과를 불러도. 탄압과 박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소외감이라는 대가가 찾아와도. 그럼에도 만족할 사람들. 그들의 흔들림이 없는 눈동자를 동경한다.

소신이란 힘들다. 누군가는 지켜야 하는 가족 때문에. 누군가는 절실하게 가난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순간 찾아올 수 있는 쾌락을 위해. 편안함으로 가득한 일생을 위해. 저마다의 이유로 불의와 타협을 좋지 않은 거라고 말하면서도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불가피할 수도 있지만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들이고, 만약에 거기서 자신을 변호한다면 뒤에 따라올 질책은 당연한 것일 테다. 비겁함과 간사함은 개인의 감정적 근거가 들어간다고 해서 변호되지 못한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구구절절한 사연이겠다만, 남이 봤을 때는 못이기는 척 받아낸 츤데레일 수도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물론 본인에게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8월15일 광복절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나는 그의 말이 소신에는 그에 걸맞은 대가가 찾아와야 한다는 소리와 같이 들렸다. 소신이 있는 사람을 동경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내가 아직 그 정도의 소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소리와 같았다. ‘난 사람’이 아닌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리 있는 듯하다. 언젠가 나뿐이 아닌, 주위가 소신으로 가득한 세상이 오기를 바랄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영화평론가인 허지웅의 말을 남긴다.

‘편하고 안전한 길이 있고, 어렵고 불편하지만 양심을 따를 수 있는 길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전자를 택한다. 우리는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약한 존재다. 그런데 아주 가끔 이상하게도 다수의 시민이 후자를 따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역사가 바뀐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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