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내가 처음 결혼식 주례를 섰던 것은 마흔 두 살 때였다. 내 자신이 결혼한지조차 10년이 겨우 넘었을 때였고 토닥토닥, 티격태격 싸우면서 결혼생활에 대한 확신 또한 서지 않았던 그 때 내게 주례 요청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었다. 주례를 요청했던 사람은 후배, 굳이 말하자면 제자인 셈인데, 지금은 S자동차의 촉망받는 간부가 되어있는 이 청년은 다소 즉흥적이고 생각이 깊지 못한 면이 있긴 해도 더벌더벌 친화력이 높아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리는 인기있는 청년이었다.

어린 나이에, 전혀 예상치 못한 주례요청이었기에 미처 적당히 거절할 방법이나 그럴듯한 회피의 논리를 미처 세워 놓질 못했다. 게다가 아버지처럼 ‘보증과 주례는 절대 사양한다네’ 쯤되는 신념 또한 없었다. 오직 ‘내 나이가 아직 어린데......’를 끊임없이 들먹이며 우물쭈물 요령도 없이 막무가내로 거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대답쯤은 예상했다는 듯 마구 밀어붙이니 결국 나는 3일 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때 주례를 시작으로 지난봄 고등학교 후배의 딸 결혼식까지 서른두차례나 주례를 했으니 그리 적지도 않은 경험인데 나는 아직도 주례소리만 들으면 제정신이 아니다. 그동안 내게 주례를 받은 사람은 제자, 후배는 물론이고 무의탁, 무연고의 장애인부부도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른 두 쌍 중에서 갈라선 이가 ‘아직은’ 한 쌍도 없고, 티가 나게 으르렁대며 사는 이도 없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부부가 함께 인사를 오니 가족들에게 면도 서고 보람스러울 때도 많다.

©픽사베이

운보(雲甫) 김기창 선생(2001년 작고)의 아들인 김완 선배는 아버지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청음회관 관장으로 오랫동안 재직했었는데 결혼식 주례를 요청받을 때마다 “이 결혼 반드시 해야 하냐?”를 다짐처럼 여러 차례 묻고 나서야 승낙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살면서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을 했던 어머니(동양화가 박내현(朴崍賢), 1976년 작고)를 가까이 봐왔기 때문이라는데, 실제 그에게 주례를 받은 부부를 이혼시킨 일 또한 많았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아픈 내공이다.

예전에 주례사에는 흔히 “검은 머리 파뿌리......운운”이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이혼이 쉽게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다보니 부부가 흰머리가 될 때까지 함께한다는 것이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에 <최고의 주례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동시에 결혼보다는 이혼, 결혼생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정말 이슈라는 생각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부가 정말 같이 살기 싫으면 이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었다. 끊임없이 다투면서 서로를 미워하기 보다는 차라리 갈라서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몇 년 전 한 여자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그녀의 부모는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이혼했다. 오십이 가까이 된 나이에도 결혼하지 않은 채 씩씩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가 얼마 전 회사 일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됐다. 동료의 권유로 심리학자를 찾아가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래 전 부모의 이혼 때문에 받은 상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그때의 아픔이 4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어 결혼에 대한,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만드는 등 그녀의 삶 속에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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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미국여행 중 어느 파티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사회자가 그곳에 모인 부부들 모두에게 일어나 춤을 출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결혼 10년 이내인 커플은 들어가게 하고, 또 얼마 후에는 20년된 커플들을 퇴장시키고 하는 식으로 플로어의 사람들을 줄여 나가다가 결국 결혼한지 60년이 넘은 한쌍의 부부만을 남게 하였다.

사회자가 노부부에게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은 서슴지 않고 서로 간의 “믿음(Trust)"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부부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노부부에게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는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사람들은 장미의 향기 같은 달콤한 사랑에 취해 결혼 하지만, 결혼생활이란 장미꽃 안에 숨겨져 있는 가시까지도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부들에게는 이성으로서 느껴지는 매력보다도 험한 인생의 파도를 함께 헤쳐 나가는 동지로서의 연대감이 더 필요할 것이다. 배우자에게 화가 나고 실망할 때마다 처음 사랑에 빠졌던 때를 기억해 보라고 권한다면 ‘갈라서냐 마냐 심각한 판에 웬 낭만을 찾냐’며 웃기는 사람 취급을 할까? 별 얘기 아니다. 그때는 사랑에 눈이 멀어 상대방의 약점과 결점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다시한번 눈을 감아보자는 것이다. 그 사랑의 불씨는 아직도 가슴속 어디엔가 남아 있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는지.

매일 매일 전쟁터 같은 삶을 살면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말이야말로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약속인가 새삼 떠올렸다.

검은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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