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사상 최고의 위력을 지닌 허리케인으로 최악의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됐던 허리케인 어마는 다행히(?) 예상보다 훨씬 적은 피해만 남긴 채 사실상 종료됐다. 불과 1주일 전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에 막대한 피해를 남긴 또다른 허리케인 하비가 사전 대피의 중요성 등 많은 교훈을 주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미 플로리다주에서만 14일까지 25명이 숨지고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주에서도 6명이 죽는 등 미국에서만 31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리브해 지역에서 38명이 사망한 것까지 합치면 70명 가까운 생명이 삶을 마감한 것이다. 여기에 재산 피해는 또 얼마나 될지 지금으로서는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만 약 680만명이 전기공급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전기 공급이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길게는 수 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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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제 초점은 피해 복구와 앞으로의 계획 등으로 옮아가고 있다. 하비나 어마와 같은 극단적 이상기후의 피해를 입은 뒤 사람들은 언제나 기후변화를 거론한다. 미국은 지난 2주 사이 2개의 초강력 허리케인에 강타당했다. 아직 경로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주에는 또다른 허리케인 호세가 미국을 덮칠 것이란 우려도 계속된다. 하비와 어마는 카테고리 4, 5의 강력한 허리케인이었다. 호세 역시 카테고리 4로 예상된다. 기후변화가 허리케인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허리케인의 강도를 높여 피해를 더 키우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점점 더 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허리케인 2개가 겹치는 것까지는 우연이라고 쳐도 3개가 연이어 발생해 미국을 강타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가 가시화하는 증거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지구가 점점 더 더워지면서 극단적 이상기후는 더 자주 발생하는데 세계는 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더욱 위험한 허리케인이 닥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경고로 받아들여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 사이에선 기후변화와 허리케인 간 연관성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한 백악관은 여전히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1일 "대통령의 마음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기후변화협약을 재검토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스콧 프루이트 미 환경보호청(EPA) 청장은 지금은 피해자 지원과 복구에 집중할 때이지 기후변화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피해자 지원과 복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과 기후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특정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걸려 있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루이트 청장의 발언은 넌센스일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의 논의는 지금까지 주로 허리케인이 앞으로 하비처럼 더 많은 비를 뿌릴 것인지(실제로 하비는 며칠 만에 1250㎜에 달하는 기록적인 강우량을 보였다) 아니면 어마처럼 강력해질 것인지(카테고리 5의 어마는 사상 최강의 허리케인 기록을 수립했다), 더 자주 발생할 것인지와 같은 몇가지 문제들에 집중됐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논의들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많은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허리케인은 지금까지 여름에서 가을 초까지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미국립해양대기국(NOAA)의 제임스 코신은 허리케인 발생 시즌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올해 첫 열대성 폭풍 아를렌은 허리케인 발생 시즌 한참 전인 4월에 발생했다. 지구온난화로 바다물의 온도가 높아지면 기존 시즌에서 벗어나 늦은 봄부터 이른 겨울로까지 허리케인 시즌이 길어질 수 있다.

해수 온도 상승은 대서양뿐 아니라 태평양을 포함한 전세계적 현상이다. 허리케인이나 태풍, 사이클론과 같은 열대성 폭풍들은 지금까지 적도 부근에서만 생성됐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열대성 폭풍이 생성되는 지점이 점점 적도 부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제까지는 허리케인이나 태풍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지역들이 새로운 피해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 문제는 이 지역들의 경우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2100년에는 유럽 일부 지역의 경우 지금보다 4배나 더 자주 열대성 폭풍 피해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또 하비나 어마는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빠른 속도로 세력을 급속히 키웠다. 이는 대피할 시간을 주지 않아 피해 규모를 키울 수 있다.

이처럼 허리케인 발생 시즌이나 발생 지점, 세력 확장 속도의 변화에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하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기후변화의 상당 부분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초래됐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따라서 인간의 활동 변화에 따라 기후변화도 줄일 수 있고 극단적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동시에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는 동물이다. 기후변화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그 해결을 위해 당장 나서지 않는 것은 자신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이득은 알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가 또는 미래 세대가 보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은 또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다. 이상기후로 피해를 입을 때는 힘들어 하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잊고 만다. 기후변화에 대한 단합된 대처가 힘든 이유다. 그래도 이제 기후변화는 인간이 힘을 합쳐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됐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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