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말머리]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렌탈’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아니면 자동차 정도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은 렌탈의 대상이 아닌 것을 찾기 힘들다. 비싼 돈 주고 구매할 여력이 안 되면, 좀 깎아 줄 테니 대신 빌려가라는 기업들의 외침일까. 바야흐로 렌탈 전성시대다.

요즘엔 렌탈의 대상에서 자유로운 것을 찾기 힘들다. 바야흐로 렌탈 전성시대다. ⓒ 픽사베이

한 타이어 회사는 타이어 렌탈 서비스를 내놓았다. 차종에 따라 자유롭게 제품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TV홈쇼핑 채널을 돌리다 보니 친환경 전기차 렌탈 특집방송이 나오고, 한 복합쇼핑몰에서는 차량렌탈권을 경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패션 스트리밍’이라는 흥미로운 트렌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음원을 내려 받지 않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듯이, 의류를 구입하지 않고 렌탈하는 패션 공유 서비스를 의미한다. O2O(Online to Offline) 방식으로 국내외 유명 브랜드 패션 아이템을 자신의 기호와 스타일에 맞게 추천 받아 빌려 쓸 수 있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고급 의류를 팔아 매출을 올려야 할 백화점에 렌탈 전문 매장이 문을 열었다. 정장, 드레스는 물론 핸드백, 선글라스, 주얼리 같은 잡화까지 빌릴 수 있다. 백화점은 이제 물건을 사러만 가는 곳이 아니라 빌리러도 가는 곳이 됐다.

한 매장에서는 옷을 사고, 그 옆 매장에서는 옷을 빌리는 풍경을 상상하니 재미있다. 나쁘지 않다. 어찌 됐건 그 옷을 내가 원할 때 입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예산이 한정적인 일반적인 소비자의 경우 비싼 옷은 보통 중요한 날에 입으려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 멋진 옷을 내가 샀는지, 빌렸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다면 빌리는 것도 한 방법.

이 멋진 옷을 내가 샀는지, 빌렸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빌리는 것도 한 방법. ⓒ 픽사베이

한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렌탈 시장 규모는 2020년에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에 3조원, 2016년에 25조 9000억원 규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성장 속도가 상당히 가파르다. 이런 시장성을 보노라면, 대기업들이 렌탈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각 분야의 기업들이 저마다 오랜 연구와 고민 끝에 내놓는 렌탈 서비스는 소비자들에게 적잖은 편익을 제공해줄 것이다. 왜? 꼭 사도 되지 않으니까. 게다가 요즘 소비자들이 얼마나 꼼꼼하고 똑똑한가. 쇼핑과 구매는 이제 동의어가 아니다.

그런데 문득 약간 엉뚱한(사실은 좀 무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러다 ‘사람’도 빌리고 빌려주게 되면 어쩌지, 하는 퍽 불온한 생각. 남자친구를 빌려주고, 부인을 빌리고, 할머니를 빌려주고, 손자를 빌리는. 이렇게 되면 빌려주는 건 ‘사람’일까, 아니면 ‘관계’일까.

만약 애인을 빌린다면 그것은 소위 ‘스폰’과 진배없지 않을까. 단순히 이성과 대화만 하고 싶어 하는 외로운 영혼들에게 미안한 소리지만 말이다. 또 대화 이상을 바라는 얄궂은 고객이 있다면, 그것은 ‘매춘’과 뭐가 다를까. 대기업 계열 렌탈 회사가 중개했으니 좀 다른 것일까? 아닌 것 같은데.

최고경영자를 빌려주고, 대학총장을 빌려주고, 방송국 보도국장을 빌려준다면? 이럴 경우 소비자가 내는 돈은 ‘사람’에 대한 지불액인가, ‘역할’에 대한 결제인가. 도지사나 국회의원은 어떠한가. 공직선거법을 뜯어 고쳐야 하나? 청와대의 주인도 누군가 빌려줄 수 있을까? 헌법 제67조 1항에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고 되어 있는데, 문구를 조금 바꿔 렌탈도 가능하다고 음험한 개헌을 시도하는 세력이 나오지 않을는지.

어떤 ‘감정’을 빌려주게 된다면 어떨까. 우정 렌탈, 존경심 렌탈, 자존감 렌탈, 소속감 렌탈, 동기부여 렌탈 등. ‘우정’이라는 감정을 1년 동안 빌리기로 했는데, 고객이 막상 그 진정성을 느끼지 못해 3개월만에 렌탈 계약을 해지하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중도해약 위약금 관련 규정은 어떻게 적용이 될까. 귀책사유는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아마 다음과 같은 응대가 친절한 목소리와 함께 이어지지 않을까.

우정, 존경심, 자존감, 소속감 등 어떤 ‘감정’을 빌려주게 된다면 어떨까. ⓒ 픽사베이

“고객님, 저희 회사의 우정 렌탈 서비스는 아시다시피 업계에서 평가 1위를 한번도 놓친 적이 없습니다. 우정A 상품이 고객님 취향에 조금 안 맞았나 본데요. 신상품인 우정C로 바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더불어 ‘인공 추억’ 상품도 함께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임상실험 결과 이 둘이 혼합할 때 효과가 좋더라구요. 우정과 추억의 조화, 멋지지 않나요?”
안 멋지다. 참으로 괴이쩍다.

특정 ‘행위’에 대한 렌탈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더 머리가 아프다. 소비자들의 온갖 변태적이고 복잡하며 가학적 혹은 피학적인 니즈를 어떻게 다 충족할 수 있을까. 법이 허용하는 렌탈의 영역은 어디까지이며, 그 영역의 폭을 넓히기 위한 렌탈 컴퍼니들의 로비는 또 얼마나 치열할 것인가. 사후 관리 서비스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살 수 있는 것도, 빌릴 수 있는 것도 너무 많은 세상이라 환괴(幻怪)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사고 팔고, 빌리고 빌려주는 상품의 개발 속도가 지금보다 조금은 늦어져도 좋을 듯싶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제아무리 훌륭한 기업이라 해도 고객의 신뢰는 그 어디에서도 렌탈이 가능하지가 않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이 공상에서 깨어날 때쯤 난 아버지가 갖고 싶다고 하신 안마의자의 가격을 알아보고 있다. 역시 사는 것보다는 렌탈이 낫네…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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