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장엄하게 물드는 가을 풍경화에 화룡점정(畵龍點睛) 하네.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Orostachys minutus (Komar.) A. Berger.

[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온 산을 가득 채운 풀·나무들이 아낌없이 마지막 선물을 내놓습니다. 눈 녹고 얼음이 풀리자 새싹과 새순을 돋아내며 봄에서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감싸 안았던 풀·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이파리를 떨구기 전 울긋불긋 물들며 황홀한 만추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지요.

달력의 절기로 9월부터 11월까지를 가을이라 일컫습니다. 그러니 11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지금부터는 만추(晩秋)를 절감하며 빠르게 가는 세월 앞에 연신 한숨만 내쉬어야 할 터이지만, 불과 수일 전 만산홍엽의 숲에서 있었던 좀바위솔과의 환상적인 만남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으니 올가을은 아주 오랫동안 곁에 머물러 있을 성싶습니다.

속살까지 울긋불긋 물든 가을 숲에서 집채만 한 바위 겉에 엄지손가락만 한 꽃대를 곧추세운 채 연분홍 또는 순백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좀바위솔 군락. ©김인철

가을, 그중에서도 초입인 9월부터 10월 말까지 경기·강원·충북·경북 등 꽤 넓은 지역에서 꽤 많은 개체가 꽃을 피우는 좀바위솔. 산이나 계곡의 바위 겉에 붙어서 자라며, 잎이 가늘고 끝이 뾰족한 게 막 싹이 튼 어린 소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통칭 바위솔이라 불리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의 한 종(種)입니다.

꽃잎 5장과 수술 10개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좀바위솔의 앙증맞은 이삭꽃차례. ©김인철
©김인철

바위솔은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도 자란다고 하여 와송(瓦松)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대표 종인 바위솔을 비롯해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진주바위솔·둥근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 등 모두 10여 종이 국내에 자생합니다.

옥색의 강물과 짙푸른 가을 하늘, 형형색색의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군락. 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번지면서 무분별한 채취로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됐다. ©김인철

바위솔은 보통 30cm까지 자라지만 좀바위솔은 잎과 줄기, 꽃까지 다 합해도 전초가 15cm 이하로 작아서 ‘좀’이란 접두어가 붙었습니다. ‘좀스럽다’거나 ‘좀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인간사에선 ‘좀’ 자가 그냥 작은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얕잡아 보고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도 세상을 호령할 듯 당당한 모습의 좀바위솔. 작은 거인의 힘이 느껴진다. ©김인철

그러나 자연계에선 ‘좀’ 자는 말 그대로 그저 작거나 왜소할 뿐 결코 모자라거나 못 미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좀바위솔이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만산홍엽의 대자연을 뒷배 삼아 오뚝 서서 천하를 호령하는 일이 결코 버겁지도, 감당 못 할 게 아니라는 걸 좀바위솔이 멋지게 보여줍니다.

오색의 단풍이 그리는 가을 풍경화에 화룡점정 하는 좀바위솔.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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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 모양의 녹색 잎 수십 개가 빙 둘러 난 정중앙에 길어야 어른 손가락만 한 이삭꽃차례를 곧추세우는 좀바위솔. 여러해살이풀이어서 뿌리를 해치지 않으면 해마다 연분홍색 또는 순백의 꽃을, 벼나 보리 등 곡식의 이삭처럼 다닥다닥 피우게 됩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각종 바위솔이 암 치료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암암리에 뿌리째 남벌 되는 수난을 겪는 게 우려스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실제 깎아지른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 불이라도 붙을 듯 붉게 물든 단풍 등 3박자와 어우러져 최고로 꼽히던 한탄강 변의 일부 좀바위솔 자생지가 몇 해 전 괴멸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불가사의한 ‘자가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하나둘씩 좀바위솔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 또다시 못된 손을 타지 않으면 수년 내 집채만 한 바위를 가득 덮었던 장관이 재현될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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