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밤새 끙끙 앓고 여섯 번이나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욕심을 부리면서 짜놓은 마지막 학기 시간표 덕분에 마감에 보기 좋게 시달리고 있는데, 컨디션까지 안좋으니 문득 서러움이 찾아왔다.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공모전은 제출하지 못할 느낌이다. 쌍화탕을 네 병째 비워낸 뒤에 내 앞날을 생각해봤다. ‘밝을 전망입니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미래에 등장할 수 있냐 묻는다면, 멋쩍게 뒷덜미를 긁으면서 ‘글쎄요’라고 대답해야 할 느낌이 들었다.

©픽사베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나는 앞으로도 살아남겠지만 내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감기 때문에 생기는 단순한 변덕이 아닌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었다. 이건 내가 이뤄낸 나의 모든 경험과 활동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내가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대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힘들 것이다. 앞으로 더 힘들 것이다. 성인이라 불리는 나이에 들어온 지 상당히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헤매고 벅찰 것들이 많다는 걸 예상할 수 있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애정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배운 건 많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은 제어 못하는 사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사람, 주체적으로 선택하지를 못해 늘 불안해하는 사람 등. 얼마 전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사춘기의 정서적 혼란에 대해 검색해본 적이 있고, 누가 보면 사춘기라는 건 대한민국 한정 20대 이후에 오는 증상이라고 생각할 법했다. 나도 사춘기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다. 그리고 이걸 한창 겪는 와중에 사회로 내던져지는 경우를 꽤 많이 봐왔다. 졸업을 앞둔 나도 소외감과 고독함이 세지는데, 과연 내 친구들은 괜찮을지. 법적 성인의 연령을 상향조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할 때가 있다. 우리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저 어린 채로 나이만 먹고 있다.

불안하게 쌓아올린 젠가가 우리들의 처지는 아닐까. 젠가는 블록들을 빼면서 즐기는 놀이다. 다만 이미 쌓아놓은 상태부터가 위태롭다면 누구도 쉽사리 손을 댈 수가 없다. 가족 1층, 친구 2층, 선후배 3층… 취업 8층, 연애 9층, 대인관계 10층. 하지만 그 동안 내가 학교에서 배워온 것들은 생각보다 유용하지 않았고, 나의 불안함과 위로받을 수 없는 외로움이 만들어낸 탑은 과연 얼마나 견고할 것인지. 질 것 같아서 게임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상대방에게서 야유가 들려올 것만 같다. 미움받는 것뿐이 아닌, 포기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창의적 사고와 효율적 업무뿐 아니라 지독한 불안감에서도 우리들의 상상력은 일하기 시작한다. 그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일단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할 텐데, 이런 걸 가르쳐준다는 학원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미안하지만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힐링이 초과공급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앞으로 계속 힘들 이유는 간단하다. 개개인의 감정 회로를 바꾸는 것은 주입식 교육과 이해가 아닌, 납득과 체화에 있다.

김영하에게서 나온 ‘비관적 현실주의’와 라이언 홀레데이의 ‘에고라는 적’은 당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모든 근거없는 망상을 버리라고 말하는 데에서 공통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완전한 극복이 없었기에 우리들은 앞으로 힘들 것이다. 나 또한, 당신 또한. 슬픈 나날이다. 블랙 코미디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다.

더 이상 스스로가 만든 불안감에서 휘둘리지 않을 때가 어른일 것이다. 머리만 커서는 쓸 데가 없다. 앞으로 더 힘들자. 어른이 될 때까지. 나는 조금 더 힘들 예정이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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