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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사고, 언제까지 기도만 할 것인가[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유세진 | 승인 2017.11.09 12:08

[논객닷컴=유세진] 지난 10월1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만달레이 베이 리조트 야외공연장에서 스티븐 패독(64)의 무차별 총격으로 58명이 숨졌다. 미국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앞서 2016년 6월12일에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동성애자 나이트클럽에서 오마르 마틴(29)의 총기 난사로 49명이 사망했다. 미국 제2의 총기 대량살상 사건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총격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5일에는 텍사스주 서덜랜드 스프링스의 침례교 교회에서 데빈 패트릭 켈리(26)의 총기 난사로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규모로는 미국 5번째의 사건이다. 희생자의 절반이 넘는 14명이 어린이들이었고 3대에 걸친 일가족 8명이 한꺼번에 희생되는 등 안타까운 사연들이 미국민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미국에서 대규모 총기폭력은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사건은 점점 더 대형화, 흉포화하지만 사건이 되풀이될수록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씩 둔감해진다.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총기 규제 문제가 사회 이슈로 등장했지만 잠시 논의되다 흐지부지될 뿐이었다. 민주당 측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들고 나오면 미총기협회(NRA)의 정치적 후원을 받는 공화당 쪽에서 희생자들을 이용해 총기 규제 강화를 정치 문제화해서는 안 된다며 깔아뭉개는 식이었다.

아시아 순방 중 총격 소식을 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번에도 역시 “이 사건은 총기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총격범의)정신 건강이 문제”라며 총기 규제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 역시 트위터에 “텍사스의 총격 소식에 매우 가슴이 아프다. 서덜랜드 스프링스는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고 적었다.

그러자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케이리 페네베이커는 라이언 의장에게 “당신에게 6자리 숫자(최소 1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이 지급되는 것은 행동을 하라는 것이지 단지 기도나 촉구하라고 그 많은 돈을 주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원뿐만 아니라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언제까지 애도하고, 조기를 내걸고, 기도만 할 것인가? 과거의 수많은 총기 난사 사건에서 미국은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는가? 이들 비극들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그러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목소리들에 힘입어 총기 규제 강화를 어젠다화하려 하고 있다. 이런 민주당의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지금으로서는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 변화가 필요한 때가 됐다는 점에는 많은 미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픽사베이

총기 사고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은 분명 특이한 나라이다. 국민들의 총기 보유권을 지지하는 수정헌법 2조의 영향으로 국민 100명 당 총기 수는 88.8정에 이르며 10만명당 3명이 총기를 이용한 살인으로 생명을 잃는다. 15분에 1명꼴로 총기 폭력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총기 보유권과 안전한 사회를 내세우는 총기 규제 강화의 필요성은 미국 사회에서 풀리지 않는,대표적인 해묵은 갈등이다. NRA 등 총기 보유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정신건강이 더 중요한 문제라면서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총기를 더 많이 보유해야 총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번 텍사스 총격 사건에서 총기를 든 시민 한 명이 총격범과 대치해 희생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극히 드문 일일 뿐이다. 더 많은 총기는 총기 사고를 예방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많은 총기 사고를 부르며 총기가 적을수록 사고도 줄어든다는 것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총기 보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동차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숫자 역시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와 큰 차이가 없는데 왜 자동차에 대해서는 규제를 주장하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자동차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규제들을 받고 있다. 국가에서 안전 기준을 마련했고 최고 속도에 제한이 가해졌으며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화됐고 안전등급 평가와 에어백 장착 등이 의무화됐다. 이러한 규제들을 통해 자동차 사고에 따른 사망률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총기 구매 희망자의 배경 조사라든가 반자동화기를 자동화기처럼 개조해주는 범프 스탁의 금지, 21세 미만인 자에게의 총기 판매 금지 등이 총기 규제 강화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총기에 대해서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규제들이 도입됐다면 고칠 수 없는 미국병으로 인식돼온 총기 사고의 희생을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총격범 켈리는 공군 복무 시절 가정폭력으로 군사재판을 받은 적이 있으며 정신병원에 입원 중 한때 탈주하기도 했으며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적도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모두 기록돼 자료로 남았다면 그는 총기를 구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 공군은 어느 것 하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규정을 어긴 것이다. 총기 규제 강화도 물론 필요하지만 현재 마련된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졌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원칙에 따른 규정 준수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잘못을 고치고 그 반복을 막을 수 있는 학습 능력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총기 분야에서만, 특히 미국에서만 적용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대형 참극이 되풀이되는데도 조문과 기도만 하겠다는 것은 결국 이를 막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허언일 뿐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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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진  dbtpwl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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