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11월 7~8일, 1박2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한국을 방문한 10번째 대통령이었고, 미국대통령들의 총 방한 횟수로 치면 18번째였다. 이 기간 동안 트루먼, 케네디, 닉슨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 한 번 이상 한국을 방문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도 이승만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10명이었으나 방문 회수는 34회에 이르렀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으로 일본에 간 것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을 미국으로 갔다. 이 대통령의 1954년 미국 국빈방문은 한국 대통령의 첫 방미였다.

한국 대통령의 미국 방문 횟수가 월등히 많았던 것은 한국 외교의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은 우리의 유일한 군사동맹국인데다 정부 수립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었다.

7일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청와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에 왔을 때 이승만 대통령과 경무대에서 가진 회담이 첫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아이젠하워는 당시 방한을 통해 한국군 증강의 필요성을 알게 됐고, 그런 인식이 한미군사동맹의 기초가 됐다.

아이젠하워 당선자의 방한은 휴전전략을 짜기 위한 전선시찰이 목적이었다. 한국정부로선 전쟁 중이라 영접할 경황도 없었다. 그는 4·19 이후 1960년 대통령 신분으로 다시 한국에 와 200만 서울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두 번 한국에 와 가장 허술하게, 또 가장 열렬하게 환영받은 미국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 중 암살당함으로써 아시아 순방의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1961년 11월 5·16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그 후로도 박 대통령은 3번을 더 미국을 방문했고, 1966년 존슨 대통령은 국군의 월남 파병을 결정한 박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닉슨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은 중국과의 수교, 월남전 종전에 집중돼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오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 주둔 미군을 감축하는 닉슨 독트린을 선언함으로써 한국을 방문했더라도 환영받을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1979년 카터 대통령의 방한이 그런 케이스였다. 주한 미군 철수 카드를 들고 온 그였기에 청와대 정상회담 분위기는 냉랭했다. 그 해 박 대통령은 시해됐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미국의 특사로 북한에 가서 미국 인질을 데리고 왔고, 김일성의 급사로 불발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 특사를 자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카터와 한반도의 인연은 오래 가고 있다.

1980년에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레이건 행정부와 임기를 거의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났다. 전 대통령이 두 번 미국을 방문했고, 레이건 대통령도 한번 한국에 왔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선언하고 끝내 해체시킨 레이건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간에는 인간적인 교감이 있었고, 그 결과 한미 관계도 순탄했던 편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이후로 더욱 분주해졌다. 노태우 대통령이 5번, 김영삼 대통령 3번, 김대중 대통령 4번, 미국과 불편한 관계로 평가됐던 노무현 대통령도 3번이나 미국을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무려 7번을 방문해 최다방문 기록을 세웠다.

미국 쪽에서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2번 왔고, 클린턴 대통령과 아들 부시 대통령이 3번,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8년 임기 중 무려 4번이나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 4년 중 한국을 3번이나 방문했는데 미국 대통령이 특정 국가를 그렇게 자주 간 것은 드문 사례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공식방문 외에도 유엔 등의 국제회의 활동으로 빈번하게 이뤄진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도 G20정상회담, 핵안보정상회담 등의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이뤄지는 만남을 포함하면 정상 간의 교류는 훨씬 많아진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을 포함하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만남도 벌써 세 차례나 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트랙터 공장을 찾아 현지지도하고 있다. 김정은은 아직까지 외국 정상과 회담을 가진 적이 없다. ©조선중앙TV 캡처

이 같은 한미정상외교를 보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북한의 정상외교다.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을 찾아다니며 6·25 남침 지원을 구걸하는 외교를 한 것을 비롯해 집권 49년 동안 54회에 걸쳐 84개국을 순방, 제법 활발하게 정상외교를 했다.

그에 반해 김정일은 17년 집권 기간 동안 중국 5차례, 러시아 3차례를 방문했다. 3회 러시아 방문 중 수도 모스크바 방문은 한 번 뿐이었고, 나머지 두 번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울란우데였다. 한국 대통령이 5년 임기 중 대개 30여 차례 순방외교를 하는 것에 비하면 칩거 수준이다. 김정은은 그나마 아직 한 번도 그런 경험을 못했다.

특히 종주국인 중국과 구 소련 및 러시아 국가 원수의 방문이 없었다. 러시아 국가원수 가운데 북한을 공식방문한 사람은 2000년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문이 유일하다. 구 소련 시절 스탈린에서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최고 권력자인 서기장 중에서 누구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모택동과 등소평이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북한에 가지 않았다. 강택민 주석이 2001년, 호금도 주석이 2005년 평양에 갔지만 자신들의 한국 방문에 대한 미안치레용이었다. 현 시진핑 주석도 등소평처럼 부주석 때 한 번 간 것을 빼곤 북한에 가지 않았다.

이처럼 북한은 골방에 틀어박혀 창살 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북핵 해결의 관건이나, 밖으로 내몰수록 몸을 웅크린 채 문고리를 잡고 발버둥을 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연설에 그 원인을 ‘체제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진단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두려움을 떨쳐 내게 하려면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가 누구여야 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내민 손은 뿌리친 것 같고, 시진핑 주석이나 푸틴 대통령은 별로 어린 김정은을 만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면 어떨까? APEC 정상회담 참석 중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친구가 되려고 무진 애쓰고 있다”며 “언젠가 친구가 될지도 모르지...”라고 트위터를 날렸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