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참 이상하기는 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비리가 마치 독버섯처럼 정권 곳곳에 펴져 연일 썩은 내가 진동하듯 하는데, 유독 그들에게서는 흔적이 없는 걸까. 문고리 3인방, 그 중에도 안봉근과 이재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개 꼬리 감추듯’ 숨어버렸다. 그리고는 국회청문회와 헌법재판소가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3인방의 하나인 정호성만이 문건유출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스스로에게 묻어있는 추악한 것들을 털어내는데 온 힘을 다 쏟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훨씬 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촛불의 함성이 점점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 이미 청와대 안에서 호가호위하던 흔적들을 지우고 또 지우려했는지 모른다.

부패의 악취는 아무리 열심히 털어내고 지우고 태워도 어디엔가는 그 흔적이 남아있는 법. 4년 동안, 청와대 문고리를 잡고 있으며 온갖 위세를 부렸던 그들의 비리가 발견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들이 숨을 곳은 하늘 아래 어디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음습한 곳에서 가장 천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안봉근·이재만의 배신 혹은 얄팍한 계산?

그들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매달 007가방에 담은 특수활동비를 받았다. 무려 40억원이다. 문고리를 잡고는 최순실에게만 문을 열어주고, 자신들에게 아부하는 인간들만 챙기고, 내부 편 가르기로 정권이 무너지는 국정농단을 야기시킨 것도 모자라 국민세금을 뇌물로 바치는 심부름까지 한 것이다. 두 사람은 붙잡히자마자 그 사실을 시인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받아 전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그들은 왜 수많은 다른 의혹들, 이를테면 뒷돈거래가 의심되는 안봉근의 경찰인사 전횡이나 최순실과의 커넥션 같은 것과 달리 이렇게 순순히 검찰에 ‘고백’했을까. 아마 ‘심부름’만 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으로 숨기고 지운 다른 수많은 죄들이 덮어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영악하고 얄팍한 계산이 엿보이기에 사람들은 더 손가락질을 한다. 그들이 누구인가. 20년 가까이 박근혜를 ‘모신’ 그야말로 충신들이 아닌가. 안봉근은 1997년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말 그대로 수족처럼 따르던 첫 비서가 아닌가. 그래서 누구보다 박근혜로부터 배신을 모르는 충신으로서 총애와 신임을 받았고, 그 덕분에 청와대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위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독배를 자처하지 않고 결국 ‘주군’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것이 ‘진실’을 선택한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박근혜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들만 살기위한 ‘배신’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가의 보도’인 신뢰를 저버린 사람은 그에게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직언을 하고 일을 하려다 상처와 실망만 안고 돌아선 사람들이 아니다. 그의 옆에서 교언영색으로 아부를 일삼다 권력이 바닥에 떨어지자 자기만 살겠다고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모두 ‘충신’으로 착각했다. 착각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배신자’라며 쫓아냈다. 지금의 고립무원은 예고된 재앙이자 인과응보이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지만 무엇 하나 빠뜨리는 법이 없다. ©픽사베이

소이불루(疎而不漏) 하니

연일 박근혜 정부의 권력자들이 감옥으로 가고 있다. 문고리 3인방에 이어 3명의 국정원장도 같은 신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잡혀 들어가고, 상상 못할 죄들이 밝혀져야 지난 정권의 거대한 적폐가 청산될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갈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한데 그 속도가 느리다고 불만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는 사이 요리조리 빠져나갈지 모른다고 초조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죄를 피하는 것이 어디 계산대로 되는가. 숨긴다고,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도 않고 사라져서도 안 된다. 운 좋게 빠져 나갔다고 생각해도 어느 날 그물에 덥석 걸린다. 이병주의 소설 <매화나무 인과>는 살인을 저지르고는 그 시신을 마당 매화나무 밑에 몰래 묻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처자식이 다 죽게 되는 어느 집안의 이야기다. 소설은 노자의 <도덕경>의 한 구절로 끝을 맺는다. ‘천망(天網)은 회회(恢恢)하나 소이불루(疎而不漏)니라.’

우리는 이따금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지만 무엇 하나 빠뜨리는 법이 없다. 죄를 벌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늘이다.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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