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다큐멘터리 ‘송환’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비전향 장기수는 국가보안법·반공법·사회안전법으로 인해 7년 이상의 형을 복역하면서도 사상을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화는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의 일상을 12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한다.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서대문 구치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며 전향 공작을 당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남한 언론은 간첩을 촬영할 때 특수조명까지 활용해 이들을 험상궂게 보이도록 노력하고, 남한 정부 역시 허가받지 않고 북에 관한 촬영을 했다며 작품 제작을 방해하는 식이다. 정부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간첩사건을 조작했다는 정황이 영화 곳곳에 나와 있다.

그러나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하다. 전향 공작의 폭력성을 알리겠다는 기획의도가 너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직적·체계적인 전향 공작은 옳지 않은 행동이었으며, 비전향장기수들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을 활용해 북한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려는 남한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1992년 봄, 나(김동원, 감독)는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 김석형을 내가 살던 동네인 봉천동에 데려오는 일을 부탁받는다. 나는 그들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사실에 낯설음과 호기심을 갖고 첫 대면을 하게 된다. 한 동네에 살면서 난 특히 정이 많은 조창손과 가까워지고 이들의 일상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들을 손자처럼 귀여워하는 모습에 정을 느끼는 한편 야유회에서 거침없이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모습에선 여전한 거부감을 확인한다.

얼마 후 조창손은 고문에 못 이겨 먼저 전향한 동료 진태윤, 김영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전향자들에게는 떳떳치 못한 자괴감이 깊게 배어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난 이들의 송환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장기수들의 북쪽 가족을 촬영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입국 절차가 무산되고 되려 허가없이 영화 제작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데, 대신 이 사건을 계기로 장기수 할아버지들과 나의 친밀감은 두터워지게 된다.

(중략) 비전향 장기수 63명은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다.이제는 자료 화면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그들. 나는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없고, 오랜 고문에 쇠하고 연세도 많은 그들 또한 더 이상 남측과 교류하지 못한 채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중립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더라면 정말로 좋은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다. 12년 간의 끈질긴 노력과 관심으로 일궈낸 작품인만큼 편향적인 부분만 빼면, 다양한 시각을 이끌어내면서도 현실에 대해서 조곤조곤 일깨워줄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지적처럼 편향적인 언론은 굉장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를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을 찌푸렸던 대사가 있었다. 살아 있는 비전향 장기수가 한국에서 죽은 동지의 무덤에서 하는 얘기였다.
“비록 썩은 사회에 묻혔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몇몇 눈에 띄었다. 노골적으로 북을 찬양하는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것 정도야 강제성을 띤 채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 시민이 되기는 싫다”는 등 자극적인 대사와 ‘꽃동네에서는 사람을 가두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라는 주관적인 나레이션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장기수 중 한명의 맨 다리를 보여주며, 구치소에 있었을 당시 구두발에 다친 상처를 클로즈업해 남한의 폭력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이 영화의 투박한 말투도 아쉽다. 영화에는 조건 없는 북송은 안 된다며 상호 맞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들을 물건처럼 말해 불편했다. 지나친 욕설과 함께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국군포로는 왜 돌려보내지 않느냐며 비난하는 대목도 표현 방식이 너무 거칠었다.

물론 우리가 잘못한 부분들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전향 장기수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며 아픈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전향 장기수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자신들처럼 북한으로 넘어간 납북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이해해달라는 자세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다소 편향성을 가진 다큐였다. 감독이 말하는 바를 요약하면 북파 간첩들도 하나의 인격체인데, 사상을 강제로 전향시키려 온갖 고문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권 측면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처럼 자극적이고 노골적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중립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더라면 좋은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다. 12년 간의 끈질긴 노력과 관심으로 일궈낸 작품만큼 편향적인 부분만 빼면,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훌륭하다. 영화의 지적대로 한국 언론은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에 얽혀 편파적 성향을 띄고 있다.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사실을 외면하며 그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든지 다양한 사회 갈등이 존재한다. 이때 갈등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대응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언론과 미디어는 대중들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사회문제를 인식하는데 큰 영향을 주는 매개체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 속 메시지처럼 언론은 편식하지 않고 건강해야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마다 논조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팩트는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전하되 판단은 국민이 하도록 열어놔야 한다. 언론의 공정성 의미는 다양한 시각을 자유롭게 전달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다큐는 편향적이었으며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은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돼 서울보다 훨씬 질 높은 생활과 좋은 대접을 받는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정말로 완벽하게 우리는 잘못되었고, 비전향 장기수들은 완벽한 피해자였을까?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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