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서울 이태원의 삼성미술관 리움에는 보물 제1394호로 지정된 ‘경기감영도’(京畿監營圖)가 있다. 인왕산 봉우리 남쪽으로 펼쳐진 서대문 밖 경기감영의 풍경을 12폭 그림에 담아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문화유산정보가 서비스하는 이 그림에 대한 묘사가 매우 훌륭하니 옮겨본다.

‘병풍은 오른쪽부터 제1폭에 서대문이라고도 부르는 돈의문(敦義門)과 수문장청(守門將廳)이, 제4째 폭에는 솟을대문에 기영(圻營)이라 쓰여진 것이 보인다. 제6폭의 가운데 큰 건물은 관찰사가 집무하는 선화당(宣化堂)이다. 제8폭과 제9폭에 걸쳐 연꽃이 만발한 연지가 보인다. 이러한 대표적 건물 말고도 관아의 측간이나 작은 창고까지 묘사되어 있다.’

경기감영도 12폭 병풍(위)과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경기감영도’ 부분(아래) ©문화재청, 서동철

문화유산정보는 제3폭에서 제6폭 아래에 걸쳐 보이는 경기감사의 악대를 동반한 화려한 행렬도 언급해 놓았다. 특히 경기감사로 추정되는 인물은 말을 타고 있는데, 다른 인물과 달리 눈, 코, 입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어 그 중요성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이 그림의 소나무 표현은 도화서 화원이었던 이의양(李義養, 1768∼?)의 기법을 연상케 한다는 미술사학계의 의견도 개진된 적이 있다고 한다.

경기감영은 서대문사거리 적십자병원 자리에 있었다. 지하철 서대문역 3번 출구와 적십자병원 사이에는 지난해 경기감영 터를 알리는 표석도 세워졌다. 경기감영은 세조 연간부터 1896년 수원으로 옮겨 갈 때까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1903년부터는 한성부 청사로, 1914년부터는 고양군청 청사로 쓰여지기도 했다.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고양시의 역사가 두루 담겨있는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

1905년 고종황제 칙령으로 창설된 대한적십자사는 1926년 지금의 자리에 적십자병원간호부양성소를 열었고, 1937년 근대적 종합병원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그런데 요즘 이 주변을 지나다 보면 적십자병원 서쪽부지에서 재개발공사가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흔적이 남아있는지 알 수 없지만 경기감영 터다.

경기감영은 조선시대 경기도 관찰사의 집무실이 있던 중심 관아였다. 관찰사는 예하의 부윤, 목사, 대도호부사, 도호부사, 군수, 현령, 현감 등 지방관을 감독했다. 감영에는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의 6방이 있고 도사, 판관, 막비 등의 기관을 두어서 일반 행정은 물론 군정과 사법까지 망라하던 기관이었다.

감영이란 도(道)라는 행정조직의 고향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지난달 ‘전라감영의 재창조 복원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대대적인 ‘문화기공식’을 갖기도 했다. 전북도는 전라북도청을 허문 옛 감영 터에 2019년 말까지 선화당과 내아, 내아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핵심건물 7동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 서대문사거리에 지난해 세워진 ‘경기감영 터’ 표석. ©서동철

경기도의 경우에도 어떤 방식이든 경기감영 터에 대한 최소한의 보존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마침 경기도는 2018년 ‘경기 천년의 해’를 앞두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1018년(고려 현종 9년)은 중국의 제도를 본받아 도성(都城) 바깥 지역에 경기(京畿)라는 개념을 도입한 해라고 한다.

오래된 역사를 제대로 되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서울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서울시는 그동안 ‘조선왕조 600년의 수도’에서 벗어나 ‘한성백제의 수도 위례성에서 시작된 2000년 역사 도시’라는 이미지를 심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하지만 성과가 없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아직은 미미한 것도 현실이다.

경기도의 ‘경기 천년의 해’ 사업 역시 서울시의 ‘2000년 역사 복원’과 다르지 않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경기감영 터의 재개발 작업이 지금 어디까지 결정이 이루어졌는지 높게 둘러쳐진 담장 밖에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럴수록 경기감영 터는 서울에 있지만, 그 보존 주체는 경기도라는 의식이 경기도 구성원들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경기 역사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경기감영 터는 중요하다. 경기도는 ‘경기 천년의 해’ 사업과 동시에 경기감영 터가 콘크리트 더미에 완전히 묻히지 않게 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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