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모처럼 서울에 온 선생님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습니다. 가볍게 시작한 술자리가 밤이 이슥하도록 끝날 줄 몰랐습니다. 강원도 인제 골짜기에 혼자 기거하며 글만 쓰는 분입니다. 스스로 ‘변방의 시인’임을 자처하면서 대처에는 가능하면 발걸음을 하지 않습니다. 시인 무리에 잘 섞이지도 않습니다. 제게는 문단의 대선배이자 스승 같은 분입니다.

결국 선생님이 막차를 타야할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술꾼들이 흔하게 하는 습성이 있지요. “에이~ 이왕 늦은 거….”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무교동에서 시작한 술자리가 인사동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저는 집에 외박을 통보하는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칠십 넘은 선생님을 한 겨울에 혼자 주무시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처럼 과음을 한 탓에,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말도 못하게 쓰렸습니다. 제가 그럴 땐 선생님은 더하시겠지요. 해장국이라도 드시게 해야 할 텐데, 인사동의 아침은 익숙하지 않은 터라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작정 헤매다가 결국 낙원동으로 건너갔습니다. 두리번거리던 중에 한 순간 눈이 환해졌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국밥집 간판 하나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그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는 집이었습니다.

©픽사베이

요즘 보기 드물게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지요. 선생님이나 저나 그런 걸 따지는 성격이 아니니까요. 자리를 잡고 앉아 벽에 쓰인 가격부터 보았습니다. 해장국 2000원. 다시 한 번 눈을 부비고 봤습니다. 하지만 2000원이라는 숫자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2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그 집에는 시간이 멈춰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요즘 음식 값에 대해 은근한 공포까지 있었던 참입니다. 몇 해 전부터 자주 다니던 냉면집에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냉면 한 그릇 값이 10000원으로 오르던 무렵이었습니다. 7000원, 8000원으로 오를 때까지는 그런대로 감수할 만하더니 어느 날 결국 10000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게는 심리지적 마지노선을 넘어선 값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북에서 피란 온 노인들이 많이 찾던 집이었습니다. 선입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가격이 많이 오르고부터는 주머니가 가벼워 보이는 노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냉면 한 그릇 먹으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게지요. 그 어른들이 키운 음식점인데 말입니다.

하긴 그곳만 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B식당 같은 곳은 냉면 한 그릇이 13000원이니까요. 냉면 값만 비싼 것은 아닙니다. 한 때 자주 다녔던 명동 H식당의 곰탕은 보통이 12000원이고 특은 15000원입니다. 지갑이 얇은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지요. 거기서 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년 최저시급이 7530원으로 16.4% 상승하면서, 그것을 핑계로 음식 값부터 오를 게 뻔합니다. 그것도 고급음식점들이 앞장서겠지요. 외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두려워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2000원짜리 국밥이 있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국밥집은 꽤 붐볐습니다. 가장 많은 건 추레한 입성의 노인들이었습니다. 술이 덜 깬 것으로 보이는 술꾼들도 듬성듬성 앉아있었습니다. 공사장에서 온 것 같은 인부 몇 명, 그리고 퀵서비스 기사로 보이는 남자…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도 끼어 앉았습니다. 대부분 혼자 와서 묵묵하게 수저를 놀리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소주병이나 막걸리 병을 앞에 놓고 앉은 사람들도 몇 있었습니다. 들어와서 자리가 없으면 주인이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습니다.

상 위에는 소금 그릇과 고춧가루 그릇이 하나씩 놓여 있었습니다. 젓가락 통을 보니 짝이 맞는 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타박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해장국이 나왔습니다. 파란 배추우거지에 기름이 동동 뜬 국이었습니다. 그리고 허옇게 담근 깍두기 한 접시가 따라 나왔습니다. 그릇에 수저를 넣어 몇 번 휘저어도 고기는커녕 내장이나 선지 한 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먼저 수저를 든 선생님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나왔습니다.

“와! 맛있다! 정말 맛있다.”

저도 얼른 한 입 떠 넣어보았습니다. 절 위로하려고 하는 빈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고기 한 점 안 들어간 퍼런 배춧국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오래 끓인 깊은 맛이었습니다. ‘착한 가격’에 이은 ‘착한 맛’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결국 국그릇에는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았습니다. 슬그머니 건너다 본 선생님의 그릇도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물 한잔 갖다 주지 않아도 불쾌하거나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집을 나섰습니다. 먼 길을 가야 하는 선생님의 발걸음도 가벼워보였습니다. 해장국을 먹고 나오는 사람마다 가슴에 난로를 하나씩 품은 것 같은 따뜻한 얼굴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2000원에 먹을 수 있는 뜨거운 밥 한 끼. 그야말로 추운 겨울 최고의 보시였습니다. 해장국을 푸는 주인의 얼굴이 부처처럼 자비로워보였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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