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 고전 읽기]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오피니언타임스=김호경]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이나 자료를 찾게 된 것이 8~9년 되어 간다. 자주 가다보니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특히 두 청년이 눈에 띄었다. 지나치면서 그들이 펼쳐놓은 책을 우연히 보았다. <9급 행정직>, <완전분석 한국사> 등이었다. 아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니, 지레짐작했다.

문제는 그들을 도서관에서 4년째 마주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진 반년 만에 갔을 때 한 청년은 체중이 더 늘어나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4년씩이나 도서관에서 수험공부를 하고 있을까?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합격증서’ 하나일까? 합격한 뒤에는 또 무엇을 기다릴까?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은 진리이면서도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함정이다. 아침이 오면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고, 저녁이 오면 다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다. 음악이 흐르는 분주한 커피숍에서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핸드폰 벨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어느 곳에선가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운명처럼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리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문득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지?
왜 기다리지?

이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기다리면 반드시 온다”는 허황된 충고 혹은 조언뿐이다. 그 충고와 조언에 속아 시간을 낭비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이나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도를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각자 다르다. ©김호경

오늘은 못 온다. 하지만 내일은 온다

공무원 수험공부를 하는 청년은 그나마 명확한 기다림이 있다. 합격증서이다.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르고 기다리는 사람에 비해 행복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무엇을, 왜 기다리는지조차 모른 채 시간만 죽인다. 자그마치 50년이다.

그 얼어죽을 ‘고도’라는 놈은 무엇을 하는 놈인지,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는지, 권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부를 얼마나 소유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얼굴에 흰 수염이 낫다는 것으로 보아 남자로 추정될 뿐이다. 심부름 소년이 전해주는 말은 단순하다.
“오늘은 못 온다. 하지만 내일은 온다.”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늘 만나서 커피 한잔 할 수 있을까요?” 요청했을 때 “오늘은 어렵고 내일은 됩니다”라고 답한다면 그 사람은 내일 만나줄까? 아마 내일이 되면 “오늘은 어렵고, 내일은 정말 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지 마라. 하지만 측은하기 짝이 없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주구장창 기다린다.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들을 하면서, 삭막한 시골길에서 낯선 사람과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그러다가 욕을 퍼부으면서.

횡설수설과 우왕좌왕의 결정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세상의 1만명 이상이 고도에 대해 분석했다. 가장 그럴듯한 분석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 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이다. God와 Dieu는 둘 모두 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분석이며, 해석이다.

서구 문학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희곡에도 구세주(예수),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인용되며, 주피터(제우스)와 아틀라스도 언급된다. 결국 서구 문학작품은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가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명의 등장인물과 더불어 역시나 횡설수설과 우왕좌왕에서 뒤지지 않는 포조와 럭키는 고도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이다. 포조는 권력을 가진 자, 럭키는 노예(우리들)로 추정된다. 밧줄에 묶인 럭키는 기계처럼 행동한다. 문제는 그가 뛰어난 언변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침묵으로 포조의 말을 따르다가 느닷없이 말의 포문을 연다. 그의 말은 한글로 2052자에 달한다. 연극배우가 이 대사를 외우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모든 대사도 횡설수설이어서 그것을 암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이 끊임없이 전 세계에서 되풀이 공연되는 이유는 우리들에게 고도는 무엇이고, 누구이며, 왜 기다려야 하는지 그 해답을 각자 찾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와 다양한 포스터들. ©김호경

하나의 답이 아니라 73억 개의 답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척 어렵다고 다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사는 오락가락이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뜬금없는 설정이 자주 등장한다. 헐벗은 나무 한 그루, 에스트라공이 집착하는 낡은 구두, 블라디미르의 모자,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도둑놈(한 명은 구원 받았고, 한 명은 저주 받았다), 만드라고라(Mandragora)라는 이상한 풀, 당근과 무... 이러한 요소들은 조미료는 될지언정 극의 주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떤 영국 놈이 술이 곤드레만드레 돼서 갈보집엘 갔었지. 포주 아주머니가 금발머리와 갈색머리와 빨강머리 중에서 어느 것을 원하느냐고 물었겠다. 어디 그 다음은 네가 얘기해 봐라

이 말에 대한 답도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아줄 만하다. 기다리면 결론이 나오겠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겠지... 그러한 인내심으로 계속 읽는다. 그러나 끝까지 아무런 결론도 없고, 답도 없고, 명쾌함도 없다. 그래서 어렵다고, 말들 한다. 가장 압권은 ‘고도’이다. 두 사내가 주절대는 말들이나, 맥락없이 등장하는 사물들은 고도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이다. 고도의 정체만 밝혀지면 모든 것이 풀린다. 그래서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이며,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하지만 베케트는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단지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오”
라는 아리송한 말만 남겼다.

그러나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렵지 않은 희곡이다. 결론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기에 그 누구라도 자신에 맞게 해석이 가능하다. 고도는 현실적으로 합격증서나 복권일 수 있으며 나아가 권력, 명예, 돈, 행복, 사랑, 안락함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고차원적으로 신 혹은 시간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에 핵심으로 반복되는 ‘목이나 맬까’라는 대사로 유추해보면 죽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작가의 고도(高度)의 말장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단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고도는 하나의 답이 아니라 73억 개의 답이다. 어쩌면 베케트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더 알아두기

1.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극작가이다. 오늘날 테러단체의 대명사로 불리는 IS(Islamic State)가 등장하기 전에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이탈리아의 붉은여단, 일본의 적군파(赤軍派)가 TV 뉴스를 주로 장식했다.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아일랜드인은 독특하게 묘사되는데 우리가 그들의 기질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2. 현대 희곡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 필독 작품이다. 세 명은 미국의 3대 극작가이다. 특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스탠리, 스텔라, 블랑쉬 3인이 펼치는 현대인의 욕망과 파멸이 압권이다.

3. 시간이 나면 페터 한트케(오스트리아)의 <관객모독>도 읽어보라. “이 부패한 민중들아, 이 교양 있다는 계급들아, 이 말세를 사는 속물들아, 이 망망한 황야에서 울부짖거나 하는 놈들아, 종말이나 와야 회개할 놈들아”라는 식의 꾸짖음이 난무한다.

4. 루이지 피란델로(이탈리아)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은 아버지, 어머니, 의붓딸, 아들 등 이름없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무대감독과 연출가들을 괴롭히는 기이한 희곡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독일)의 <서푼짜리 오페라>도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거지들의 친구’라는 (거지를 위한) 회사를 운영한다는 발상이 색다르다.

5. 추송웅의 모노드라마로 유명한 <빨간 피터의 고백>은 카프카의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가 원작이다. 왜 이 연극이 히트를 쳤는지 읽어보기 바란다.

6. 만드라고라는 그 뿌리가 사람 모습을 닮은 식물이다. 목을 매서(혹은 교수형) 죽은 사람(남자)의 몸에서 나온 정액이 땅으로 떨어져 자라난다는 설이 있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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