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2월 22일 진경준(50) 전 검사장이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에게서 공짜 주식을 받아 ‘대박’을 터뜨린 데 대해 뇌물이 아니라고 면죄부성 판결을 내렸다. 진씨는 2005년 김 대표에게 4억2500만원을 받아 넥슨 비상장주 1만주를 사들인 후 2015년 매각해 126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넥슨 명의의 차량 제네시스의 렌트비와 2008년 제네시스의 명의를 넘겨받는 데 필요한 비용 3000만원,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가족여행 경비 5000만원을 받은 것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진그룹에게 제 처남 회사에 일감을 주게 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진씨가 김 대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내용이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진씨가 장래에 담당할 직무에 관한 대가로 수수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진씨는 주식 대박의 종잣돈에 대해 처음엔 자기 돈으로, 나중엔 개인 돈과 장모에게 빌린 돈으로 주식을 샀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판결대로라면 기업인이 사건이 생겼을 때 잘 봐달라는 뜻의 ‘보험’으로, 판검사와 공무원에게 금품을 주더라도 뇌물 수수로는 처벌할 수 없다. 국민의 반응은 당연히 비판적이다. 뜨악하다고 할까.

대법원 판결 성역 아니야, 평가·비판 받는 것은 당연

법원의 판결은 존중받아야 한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인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판결이 나오면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의 판결도 성역일 수 없다. ‘양심에 따른 재판’에서 양심은 주관적 신념이나 개인의 호·불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객관적 사회적 공공적 양심을 요구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종종 ‘튀는 판결’을 한 판사들에게 주의를 줬다. 얕은 정의감이나 설익은 신조를 양심과 혼동하다가는 오히려 재판의 독립이 저해될 것이라고 했다.

헌법 제106조는 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공무원보다 더 엄격하게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법적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법관에게 1,2심 법관보다 더 공공적 양심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같은 선출 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은 선거를 통해 퇴출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임명된 권력인 법관은 선거로 퇴출시킬 수 없다. 그래서 임명된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

법원의 판결, 국민 신뢰가 생명...이성과 건전한 상식 확장해야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취임 초 ‘국민재판론’을 제기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법과 양심에 따르지 않고 여론 재판을 하라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사법 권력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사법 권력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법의식과 법감정과 괴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가들의 전문성은 이성과 건전한 상식을 확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건전한 상식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국민 일반의 건전한 상식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판검사들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이 추석이나 설날의 ‘떡값’과 선물, 접대 골프 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부정부패의 ‘검은 공생’이 부정청탁 금지법, 곧 ‘김영란 법’의 탄생 배경이다. 진씨는 4억2500만원을 받아 공짜로 주식을 샀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친구간 호의와 배려’라는 진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국민은 같은 ‘통속’이니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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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뇌물 등 기존 판결 등에도 상치돼

진씨에 대한 판결은 1997년 대법원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대해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직무 관련성과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한 판결과 부합하지 않는다. ‘보험 성격의 뇌물’이었던 것은 두 사건 다 같다. 김정주 대표는 법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검사가 힘이 있다. 사건이 있을 때 알아봐 줄 수 있기 때문에 진 전 검사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대법원이 2014년 유진기업 등에서 10억원 대를 받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에게 뇌물 수수죄를 적용해 징역 7년을 확정한 판결에도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법원은 김 전 부장 검사가 재직시설 스스로 수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유진기업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다른 검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뇌물죄를 인정했다.

대법원 1부의 판단이 고등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 파기 환송심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해야 한다. 검찰 역시 대법원 1부의 판단을 반박할 법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래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진씨의 뇌물 수수 여부를 둘러싼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고 본다. 기왕에도 정치인 관련 사건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건, 하급심에서 쟁점 판단이 엇갈리는 사건,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 등은 전원합의체에서 결정했다. 진씨 사건은 이런 요건에 두루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을 왜 부에 넘겼는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있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전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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