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영화 1987, 틀에 박힌 흥행공식 이제는 깨어질 때

연희(김태리)는 이한열(강동원)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았다는 신문 1면을 보고 거리로 뛰쳐나간다. 카메라는 연희를 쫓는 듯싶지만 화면은 이내 ‘호헌 철폐’, ‘독재 타도’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채워진다. 스피커 또한 연희의 목소리가 아니라 거리로 나온 차량들의 경적소리와 시민들의 함성과 구호 소리를 내뿜는다. 연희가 버스 위로 올라가 손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듯한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엔딩 장면은 연희를 뒤쫓는 듯하지만 거리의 시민들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연희는 관객들을 6월 항쟁의 현장으로 안내하기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희(김태리)를 보여주는 척 시민들을 보여주는 장면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연희가 이한열에게 선물한 타이거 운동화를 한참 비춘다. 마치 연희가 6월 항쟁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연희는 6월 항쟁의 중심부로 들어가진 못한다. 백골단에게 쫓기다 이한열의 도움을 받는 것은 소개팅을 위해 우연히 시위 현장을 지나던 것이었고, 경찰의 검문을 피해 ‘비둘기’를 전하는 것도 삼촌이 마이마이를 사주며 한 부탁 때문에, 혹은 남영동으로 끌려간 삼촌이 고문당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에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도 한열이 최루탄에 맞았다는 소식 때문이지 항쟁을 위함은 아니었다.

마이마이와 선데이 서울을 교환하는 장면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물론 연희는 ‘타이거 운동화’를 통해 이한열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더 나아가 박종철 고문치사라는 역사를 연결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노조운동 이후 술에 의존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교도관 노조를 설립하려다 파면당한 삼촌을 보며 자랐다는 설정을 통해, 당시 용기 내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에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 ‘이한열과 인연이 있던 학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 것은 아쉽다. 연희는 분명 영화에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연이지만, 6월 항쟁에서는 사건의 주변부를 머무는 여성 조연의 역할로만 그려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여성 주연 김태리 ⓒ네이버 영화 <1987> 홈페이지 캡쳐

<1987>의 제작진들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각색을 하더라도 사실을 알리는 게 우선이냐, 흥행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철저한 고증을 우선할 것이냐.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영화라면 선택해야만 할 일이다.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이 허프포스트와 진행한 인터뷰에도 후반부 추격신을 가지고 비슷한 고민을 한 흔적이 남아있다. 촬영감독과 음악감독은 영화에 맞지 않는다고 했고, 감독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작가와 제작사, 투자사,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추격신 장면이 필요하다고 해 진행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영화는 추격신을 포함하여 개봉되었고 천만 관객을 넘겼다.

<1987>, <택시운전사> 모두 역사적 사실 앞에 감히 언급할 말이 없다. 하지만 영화로써는 아쉬움이 남는 다. <택시운전사>의 택시 추격씬과 <1987>의 한열과 연희의 만남은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데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 상업영화의 한계라고 생각해 보지만 <택시운전사>에 추격신이 없었다면, <1987>에 강동원이 없었다면 관객들이 그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1987>은 포스터에도, 예고에도 강동원이 출연한다는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남녀 간의 만남 혹은 액션신 없이 흥행할 수 없다는 불안을 이제는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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