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작년 9월, 마지막 학기를 시작할 때 유종의 미를 걷겠다고 전공만 여섯 개를 신청했다. 원래는 세 개 수업만 들으면 되는 일이었고, 이미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는 상태였기에 열공을 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반응을 즐기며 공부한 것 같다. 최종 성적은 4.33이 나왔다. 8학기 중 최고성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지하철 안에서 성적을 확인할 때 드는 느낌은 두 가지였다. 최선을 다한 게 어느 정도 결과로 나온 것 같아서 드는 만족스러움과, 스스로에게 겸연쩍은 공허함이었다. 이제 정말 모두 끝난 거구나. 4년이라는 시간이.

©픽사베이

모험 영화의 플롯은 정형화된 패턴이 있다. 이상향을 꿈꾸던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는데 알고 보니 이상향이란 딱히 존재하지 않고, 되려 일상의 삶에서 소중한 부분이 많이 있었음을 깨닫는다는 결말. 이 플롯에서 주인공에게 ‘모험’은 중요하다. 모험을 떠나지 못했다면 주인공은 계속해서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자신을 상상했을 테니까.

영화와 빗댄다면 내겐 졸업이 ‘이상’, 대학생이란 신분으로 살았던 것이 ‘일상’이겠다. 다만 나는 계속해서 졸업을 꿈꾸다, 막상 졸업이 내 앞에 보이자 일상을 돌아보며 묻는 중이다. 과연 이렇다 할 의미가 있었을까. 나를, 혹은 남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빛낸 적이 있나. 내 스스로 답을 구해야 할 문제인데도 요즘은 남에게 묻고 싶다. 졸업을 마친 현실에서 나의 과거는 영화 속 CG처럼 화려하게 처리되지 않았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영화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이 지금의 내게 놓였다. 그래서 나중에 ‘예전이 좋았지’라는 늙은 소리를 하게 될까 걱정이 들고 있다. 졸업식은 다음 달인데 지금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입생 때가 좋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나는 학교를 떠나진 않는다. 딱히 적을 만들지 않았던 성격과 평균 이상의 성적 덕분에 조교 신분으로 학교를 2년 더 다닐 예정이다. 등하교가 아닌 출근과 퇴근이 된다. 공인중개사 공부와 같이 병행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다보니 같은 장소를 생판 다른 느낌으로 보게 될 거라는 게 기정사실처럼 느껴져서, 나는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예전과의 거리감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모두 예상하고 받아들인 조교 자리지만 편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해야겠지.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겨울은 날씨가 아니라 시기 때문에 이별의 계절이 되었다. 종강을 하고 애들 볼 일이 없어지는데다, 신년 계획을 이루겠다고 한창 열을 내는 사람들 덕분에 서로 연락들이 예전보다 뜸하다. 이번 달 달력에도 약속이 꽤 많이 잡혀있는데도 계속 더 보고 싶은 것 보면, 나는 독신으로 살긴 글렀다. 학교처럼 매일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졸업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들 바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서로 자기 자신을 챙기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 것 같아서. 같이 밥을 먹고,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이 멀어질 것만 같아서 나는 오늘도 주문을 건다. 잘 될 거야. 진심을 다한다면. 김광석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별이 싫으니까. 조교를 하는 동안 학교 다니는 의미를 내 사람에게 만들어주고, 빨리 엄청 벌어서 근심 걱정을 날려줘야 하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요즘 들어 예전보다 마음이 약해진 느낌이 들고 있다. 아직도 덜 큰 걸까.

아주 내키지는 않는 졸업이 어서 날 지나쳐가기를, 겨울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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