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복심은 뱃속에 감춰 둔 마음이다. 복심은 대개 흑심이거나 욕심이다. 대통령의 복심 얘기가 다시 나온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이 복심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뭔가 불안하고 불길하다.

나는 지난 1월 30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에서 열린 양정철 씨의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북콘서트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시절 그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노 대통령의 ‘복심’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가 어떻게 두 대통령에 걸쳐 복심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나를 북콘서트 장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임기 말의 노 대통령이 추진한 기자실 대못박기 정책에 앞장섰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양 씨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지시를 ‘배째라’ 식으로 거부하는 당시 문광부 차관에게 ‘그럼 배를 째드리지요’라고 말한 것으로 언론에 회자됐던 적도 있다.

기자실 폐쇄는 노 대통령 퇴임 후 즉각 폐기된 정책이다. 나는 그런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인 노 대통령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울러 당시 노 대통령 주재로 이 문제를 논의했던 국무회의 석상에서 ‘아니 됩니다’라고 말한 장관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언론보도에 안타까워했던 기억도 있다.

대통령의 마음은 절대 다수 국민의 마음과 같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과 공감하는 대통령, 국민들에게 감출 일이 없는 투명한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에게 국민들에게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것을 대신해 줄 심복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불행이자 국민의 불행이다.

대통령의 복심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는 대통령을 위한다며 대통령을 욕 먹이는 사람이다. 그들은 대통령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에 대한 충성과 나라를 위한 충성을 혼동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대통령도 그 권력을 잘못 쓰면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간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지만, 크든 작든 일단 권력을 잡으면 휘두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누구보다 절제와 인내와 관용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불편해도 국민이 편안해지는 일이라면 참아야 하는 자리이지만, 약이 입에 쓰듯이 권력자에게 그런 덕목은 불편한 것이다.

대개의 권력자들은 오히려 내가 편해야 모두가 편안해진다고 생각한다. 권력자의 그런 독단이 심복정치를 키우는 토양이다. 왕조시대의 많은 사화(士禍)는 임금의 복심을 눈치 챈 간신들이 저지른 것이다. 해방 이후 숱한 국가적인 정변의 원인도 거기에서 비롯됐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공을 세운 양씨는 두 대통령과의 인간적인 유대가 얼마나 각별한 가를 저서의 군데군데 기술하고 있다. 세상이 그를 두 대통령의 복심으로 여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런 시선이 싫어서 대통령 당선 이후 출국, 7개월 간 해외를 떠돌며 책을 썼고, 북콘서트 이후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끈 떨어진 사람’일 뿐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어느 공직도 맡지 않겠다는 말을 되풀이 강조했다.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을 통해 문 대통령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답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사람들이 온갖 비리로 대통령 재임 중 또는 퇴임 후 감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터라 그의 이 말은 상당히 솔직하게 들렸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문 대통령 퇴임 후 그의 비서가 되겠다’고 대못을 박듯이 말했다.

나는 사실 양 씨가 문대통령의 복심인지, 그가 공직을 맡을 것인지 여부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가 왜 그렇게 정치참여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는지가 어색하기까지 했다. 일부에선 그의 저술활동이나 북콘서트 같은 부대행사를 정치활동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소통과 평등의 언어를 내용으로 한 그의 책을 선거메시지 교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북콘서트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거기서 수많은 문 대통령 ‘복심들’의 축제를 구경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런 열띤 분위기는 아니었다. 북콘서트 장인 200여석의 교보생명 강당은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았고 끝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참석자들 중에서 유명인사로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개그우먼 김미화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치 현장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분위기는 행사 내내 이어졌다. 초청손님 한 사람은 “양비(양 비서관의 약칭)가 어울리는 무대는 역시 정치판이 아니겠느냐”고 물어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를 유도했다.

그런 분위기를 확실하게 띄운 것은 임종석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몸을 잘 만들어 두라”는 말을 뒤로 한 채 일찍 자리를 떴다. 행사장을 나오면서 나는 문 대통령만큼은 복심이 없고, 그래서 심복도 필요치 않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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