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내 주변에는 정치개혁을 해보겠다고 국회에도 진출하고 정당생활, 정치를 하고 있는 선후배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정치적 성패는 차치하고라도 이들을 통해 본 정치계는 철저히 돈과 계보, 이권과 먹이사슬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겉보기에 우아해보이는 학계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합리적이며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지성의 전당일 줄로만 알았는데 여기에도 교수 임용에서부터 학문적 계승에 이르기까지 학연과 지연에 따른 계보가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계보, 파벌을 나누는 풍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비즈니스나 사회문화계, 시민단체들은 말할 것 없고, 하다못해 종교계에마저도 계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떼거리식으로 몰려다닌다. 이런 판국에 내가 ‘송영욱 계보요’ 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참신하지 않은 일인지 모르겠다. 수직적인 집단주의 사회문화권에서 흔히 나타나는 외집단에 대한 내집단의 배타성과 폐쇄적인 역학작용으로서의 계보현실을 무시할 순 없다. 또한 계보정치, 파벌주의 등으로 상징되는 오늘날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타락상에 비치는 부정적 요소가 충만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계보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며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고향관계나 선후배 관계, 친인척관계 등이 이권이나 부정의 연결고리와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에야 분명히 사회적 역기능으로 작용하겠지만, 좋은 관계 속에서 함께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활용되는 경우엔 이것처럼 고맙고 힘이 되는 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의 계보는 차라리 미풍양속으로 권장할만한 일도 된다고 믿는데, 사회가 이토록 어지럽고 뒷말들이 무성하니 어거지를 쓰며 고집할 일도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내가 송영욱 계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날 이때까지 힘이 되어 주고 언제나 바른 길과 옳은 가르침을 주는 분에게 드리는 개인적인 고백이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내가 지난 30년간 신문사와 한국 장애인 연맹을 비롯한 각종 기관단체에서 송 회장님을 비교적 가깝게 모시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 고백이 혹여 회장님께 누(累)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회장님을 나의 계파보스이며, 스승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지연이나 학연도 없이 회장님을 알고 지낸 사귐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적당할지 생각해 보지만 마땅한 어휘가 없다. ‘교제’(交際)라는 표현은 연하(年下)의 사람으로서 대단히 실례일 테고, ‘교분’(交分)을 나누었다고 하면 그렇게 막역(莫逆)하게 지낸 사이라고 감히 말할 처지도 아니니 이 역시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누구 못지않게 회장님을 이해하고 따르는 자세를 가졌던 것만은 사실이다. 회장님과의 지난 30년동안 큰 추억은 없었지만 수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늘 뵙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회장님을 모시고 내가 실무자로서 기획하여 10여년간 계속됐던 <전국장애인지도자 연수세미나> 때 일로 기억한다. 첫날 오전 순서를 마친 휴식시간, 회장님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이른바 간담회를 갖게 되었다. 어떤 참가자가 물었다. “짧은 시간에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얼까요?” 질문자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던 송회장님은 나지막히 말했다. “그런 건......없겠지요.”

자극적인 말이나 선정적인 말을 피하는 분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이상한 질문이었다 하더라도 한마디로 잘라내니 나도 당황했고 질문자는 일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장애인의 권리증진을 위해 몇가지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와 난점과 고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다음 질문이 있자 회장님의 얼굴에는 생기가 돋아난 듯했다.

그리고는 30분 남짓한 동안 간혹 질문자와 응수를 섞어가며 설명을 계속했다. 성품답게 겸손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때로는 현장의 소리를, 때로는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토론을 계속하는 동안 모든 이들은 그 열띤 토론에 빨려들었다. 2박3일 계속된 연수세미나였고, 그 후에도 10년 넘게 계속된 이 연수를 통해 배운 것도 많았지만 나는 그날의 30분을 잊을 수가 없다.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바탕으로 한 장애인계 지도자로서 송회장님의 면모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고 할까. 나의 오랜 고민과 방황을 정리하게 하는 장애인계 지도자의 지혜를 엿본 30분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진리와 정의를 탐구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경건한 학문적 태도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소신, 사회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회장님의 진실과 정의에의 고집은, 궁극적인 교육이란 결국 진실과 성실의 전달 이외엔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육체적 생명이 혈통의 계보 속에서 자라왔듯이 나의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 생명은 내가 만났고 대화했고, 함께 일하며 관계를 맺었던 많은 사람들의 계보 속에서 성장했고 발전했다. 나의 사상이나 신념, 가치관 같은 것들은 모두 나와 관계를 맺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며, 특별히 중요한 몇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가노라면 나의 사상적, 사회적 계보가 그려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송영욱 회장님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고 찬스였다. 나의 삶의 가장 귀한 부분이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요즘에도 그가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면 가장 의미있는 내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뇌리에 생생하게 살아오른다. 

나는 송영욱회장님의 계보이며 제자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송영욱 변호사는 1961년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소아마비로 양 다리가 마비된 중도장애인으로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지난 55년간 무역, 금융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또한 장애인복지법, 장애인고용촉진법 등 제정의 주역으로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 장애인복지신문 회장 등 장애인의 권리증진과 복지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장애인계의 대부이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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