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춘삼월 섬진강변에 매화 꽃구름 피어오르네.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학명은 Prunus mume Siebold & Zucc. for. mum

[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예로부터 문인화의 소재로 사랑받은 사군자(四君子).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위치하며 ‘지조의 상징’으로 추앙받아온 매화. 옛 선비들은 겨울과 봄 사이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이를 이른바 심매(尋梅), 또는 탐매(探梅)라 하지요. 그리고 눈 속에 핀 매화, 즉 설중매(雪中梅)를 묵화로 그리고,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고 칭송하며 그 자신 아무리 곤궁하더라도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버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저 멀리 앞산에 해가 떠오르자 섬진강변에 가득 찬 매화 꽃밭이 한겨울 흰 눈에 뒤덮인 듯 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해마다 3월이면 광양과 하동 일대 섬진강변에 희고 붉은 매화 꽃물결이 일렁여 가만 바라만 보아도 꽃 멀미가 날 정도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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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통도사의 370년 된 홍매(紅梅)인 자장매(慈藏梅)를 필두로, 수령 600년을 넘었다는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 등이 옛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고매(古梅)입니다. 선암매와 고불매 등과 함께 ‘호남 5매’로 꼽히는 담양 계당매(溪堂梅)와 전남대 대명매(大明梅), 고흥 수양매(水楊梅), 그리고 김해의 와룡백매(臥龍白梅),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栗谷梅), 산청의 남명매(南冥梅) 등 전국에 산재한, 수령 100년을 넘은 200여 그루의 오래된 매화나무가 각기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대개 유서 깊은 고택이나 오래된 사찰에 뿌리내린 이들 고매는 전통 가옥의 예스러운 정취와 어우러져 오늘날에도 고아한 멋을 풍기고 있습니다.

수령 370년이 넘었다는 통도사 자장매. 동지섣달 눈 속에서 핀다고 해서 설중매라고도 불리는 홍매인데, 혹한 탓인지 올해는 2월 24일 현재 가지 끝에 겨우 몇 송이 분홍색 꽃잎을 여는 데 그쳤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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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에는 고매 한두 그루에서 묻어나는 수백 년 묵은 청향(淸香)을 쫓아 유유자적 유랑하던 탐매에 더해, 수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한 장관’을 즐기는 ‘신탐매(新探梅) 여행’이 인기입니다. 열매인 매실 수확 등을 목적으로 심은 수만 그루의 매실나무가 연륜이 쌓이면서 봄마다 농원 일대가 거대한 매화꽃동산이 되고, 이를 즐기려 수만, 수십만 인파가 운집하는 매화 축제가 열리는 것이지요. 전남 광양과 경남 양산의 매화 축제가 대표적입니다.

전남 광양 매화마을과 더불어 해마다 3월 대규모 매화 축제가 열리는 경남 양산의 원동 매화마을.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무릉도원 같은 매화 꽃밭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멋진 장면을 포착할 수 있어 인기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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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남 광양과 하동 일대 30만여㎡에 심어진 10만여 그루의 매실나무에 희고 붉은 매화꽃이 피면 물비늘 반짝이는 섬진강을 따라 거대한 꽃구름이 뭉실뭉실 피어나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동틀 무렵 광양 매화 축제의 중심인 다압면 도사리 청매실농원 매화 동산에 올라, 서서히 어둠이 걷히면서 섬진강과 나란히 흐르는 거대한 매화꽃의 장강(長江)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광경을 바라보면 “아~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 바로 예로구나.”라는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섬진강 시인’은 봄날 섬진강변 매화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이렇게 노래했지요.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의 시 ‘봄날’)

붉다 못해 검붉어 흑매라고도 불리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 수령 300년이 넘었으니 탐매에 나선 옛 선비들이 빠뜨리지 않고 찾았을 고매(古梅)임이 분명하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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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경남 양산의 원동 매화마을 또한 봄바람에 휘날린 매화 꽃잎이 물비늘 반짝이며 흐르는 낙동강에 곱게 내려앉아 저 멀리 흘러가는 정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낙동강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이곳은 무릉도원 같은 매화 꽃밭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멋진 순간을 포착할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희고 붉은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춘삼월, 절정의 봄이 강물 위에 떠 있는 매화 꽃잎과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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