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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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그렇게 ‘환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지나가던 내 발걸음에 순간 ‘환하다’는 형용사가 정말, 환하게, 감겼다. 일행들에게 만개한 벚꽃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 심 봉사가 눈뜬 것만큼 환했다니, 기가 막혔다. 어떤 비유, 어떤 문학적 수사가 환하다는 표현을 그렇게 절창으로 뽑아낼 수 있을까?

심 봉사는 우리 고전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의 아버지다. 아내가 죽자 무남독녀 심청을 젖동냥으로 키웠다. 심학규라는 본명이 있지만 앞을 보지 못해 심 봉사로 불린다. 심청은 자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게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뱃사람에게 몸을 팔아 인당수에 빠진다. 그러나 용왕의 배려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연꽃을 타고 다시 육지로 나와 왕비가 된다. 왕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맹인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큰 잔치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를 만난다. 그때까지도 눈을 뜨지 못한 채로 지내던 심 봉사의 귀에 자신을 부르는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번쩍! 심 봉사의 눈이 뜨인다.

우리가 <심청전>을 지금도 사랑하고 필독서로 중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심 봉사가 눈을 뜬 순간 우리 모두 함께 눈을 뜬 환한 희열을 ‘효성’이라는 덕목으로 체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환하고 그 환함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며 그 감격이 얼마나 온몸과 마음을 숙여 감사하게 했을까?

그렇게 환하게 벚꽃이 세상을 밝히고 있다. 심 봉사가 눈뜬 것만큼 환하게 피었다는 벚꽃을 두 눈을 이마까지 추켜올리며 종일 바라본 하루가 저문다. 저무는 시간 속에 더욱 환한 저 벚꽃나무들, 그 옛날 심청의 효심이 세상에 꺼지지 않는 해가 되어 잎마다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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