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장려상]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느그 아빠가 독사(毒蛇)한테 물리가꼬 얼마나 고생핸는 줄 아나? 술 묵고 계곡에서 그 뱀을 겁도 없이 맥주병에 넣을 끼라고. 팔딱팔딱 뛰면서 느그 아비 살릴라꼬 병원에 안 갔나. 가서 주사를 맞아도 피만 나오고.”

“그라다가 밀양에 독만 뽑다 돌아간 사람 집이 있다대.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아들한테 다시는 누구 독 뽑는 거는 하지마라, 아버지로 끝이다. 했다카더라. 아버지 유언이라 못 뽑아준다고 준다고, 거절을 하는데... 우야겐노? 내가 이 사람 없으면 장애인 자슥 데리고 우째 사냐고 하루, 이틀 사정사정 하니까 마지못해서 뽑아 주드라. 샛노란 독이 항그 나오는데... 이 독이 사람한테 들어가서도 안 죽고 살아있는 기 신기하드라. 느그 아빠 독 품고 세상 떠났으면 니는 세상에 음따. 이렇게 알밤 같은 딸래미 볼끼라고 그리 살았는 갑다.”

아버지가 실수로 차(取)신 독을 엄마는 차(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독을 찬(取) 아빠와, 독을 찬(蹴) 엄마, 그렇다면 현재 두 부부에겐 샛노란 독이 모두 다 사라졌을까요?

괴이하게도 엄마는, 아빠의 독을 물리치기 위해 세상을 다 뒤진 엄마는 자기 딸에게 독을 차(取)라고 합니다. 딸에게 독을 차(取)라니요? 아빠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독을?

©픽사베이

아!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면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지키기 위하여
- 김영랑, <독을 차(取)고>

벗이 그만 무서운 독을 버리라 해도 독을 차(取)는 삶을 버릴 수 없었던 김영랑 시인. 일제강점기 속에서 자신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독해지는 일 말고는 방도가 없었을까요? 일제 강점기도 아닌데 기성세대들은 우리보고 독을 차(取)라고 합니다.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딸에게 엄마는 독이 없이는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도 아닌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급을 받고,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술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20, 30대 청년들은 ‘독을 차(蹴)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됩니다. ’한심하고 미래 없는 청년‘이 되어 버립니다.

엄마와 덩달아서 독을 차(蹴)는 삶을 사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보면서 국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독을 차(取)는 삶을 산지도 어느덧 5년째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제는 독을 몸 전체에 품어 버려서 몸속에 독을 품은 지도 잊고 삽니다. 그러나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를 만날 때, 선생님이 먼저 된 현직 교사 친구를 만날 때,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독을 쏩니다. 김영랑 시인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품었던 순수한 독이 벗을 해한 꼴입니다. 그러나 결코 벗을 해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엄마는 나에게 독이 아직 부족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 정도 독을 품은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얼마나 독을 차(取)야 책상에서만 살았던 그 삶이, 친구와 커피 한 잔 먹는 것도 가슴 졸였던 그 삶이, 7시간을 자면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던 그 삶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오늘도 독을 차(取)고 도서관에 갑니다. 아버지의 독을 빼주었던 그 밀양의 기술자는 아직도 살아 있을까요? 엄마처럼 사정사정 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독 좀 차(蹴)자고. 아버지가 독을 빼고 낳은 세상의 아들, 딸들이 독 때문에 목이 조여 온다고. 일제 강점기도 아닌데.

‘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내 외로운 혼 지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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