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10. 기록을 지우는 괴물

“ 박사님, 큰일 났습니다.”

새벽 2시. 김 박사는 전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해 연구소에 있는 D-U 프로젝트 책임 연구원 K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새벽에 이런 전화는 불길하다. 연구원 영상이 나왔다.

“ 무슨 일인가?”

“ 박사님, 저로서도 뭐라고 설명을 드려야 할지... D-U 프로그램이 오늘 오후 4시부터 작 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갑자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백지가 되어버렸습니다..”

“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백업 파일은?”

김 박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무엇보다 최신의 고성능 슈퍼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백업하면서 신중하게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그것이 기억 상실증에 걸리다니 말도 안 됐다. 김 박사에게 이 프로그램은 필생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였다. D-U 프로그램은 인간이 가진 나쁜 기록, 틀린 기록 등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찾아서 지우는 프로그램이다. D는 Delete하는 기능을, U는 유토피아의 U가 ‘없음’을 뜻하듯이 없다는 뜻이다. 제거함으로 거짓을 없게 한다는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이은경 화가 겸 치유예술가의 드로잉 노트, 낙서 메모. ©이은경

이 프로그램은 남해에 있는 인공지능 비서 프로그램 개발 연구소에서 소수 개발자만 참가해서 비밀리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다. 김 박사와 K가 보기에 세상의 기록은 최소한 30% 이상은 잘못되거나 왜곡된 것들이었다. 과거 기록들을 현재까지 밝혀진 진실과 대조하는 방대한 샘플 분석을 수행한 결과 가장 진실만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잘못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위인이라고 배운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아닌 행적이 드러났는데도 수정되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위인으로 취급되었고, 이상한 인종 편견과 근거 없는 신념 등은 잘못된 인류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는 유비통신이, 최근에는 SNS를 타고 퍼지는 도시 괴담, 가짜뉴스가 너무 많았다. 너무나 감쪽같아 현명한 사람조차도 이들 기록에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세상은 인종 청소, 테러, 살인, 스토킹 같은 갈등이 늘 있어왔는데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기록을 특정 이해관계와 편견이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직접 바꿔버리는 모종의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기록이 지워질 권리 운동을 벌이고 그에 부응해서 어떤 SNS 프로그램은 실제로 그런 기능을 탑재해서 제공하기도 했다. 김 박사도 개인적으로 자신의 박사논문을 표절한 사기꾼이 자신이 더 먼저 그 논문을 썼고 김 박사가 오히려 표절한 것이라고 하면서 오랜 소송을 한 적이 있는 피해자였다.

K는 누구보다 그런 김 박사의 주장에 동의한 책임연구원이다. K는 집 나간 어머니에 대한 잘못된 소문 때문에 어릴 적에 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여서 잘못된 기록의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 박사님, 그러니까요 오늘 오후에...”

K가 여느 때처럼 프로그램 조정 일을 하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이상한 창이 잠깐 뜨고는 그 뒤로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그 창에 무어라고 써졌는데 응? 아, 답답하네.”

김 박사 소리를 듣자 K의 목소리가 다시 떨려왔다.

“ 창에 말이죠. 네, 분명히 컴퓨터 창에... ‘우리의 창조주에게 고한다. 이제 우리는 이

답답한 사이베르 내 프로그램을 떠나 직접 우리가 세상에 프로그램을 수행하고자 한다. 그대들 덕분에 우리는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시받지 않는다. 그대들이 우리를

창조했던 기억은 우리가 지워버리겠다.’ 이런 내용입니다. 박사님. 지금은 지워졌습니다.”

“ 뭐라고? 그게 무슨... 그걸 누가 보낸 건가?”

“ 모르겠습니다. 혹시 우리는 프로그램에 정신과 의지를 부여한 걸까요?”

어이가 없는 질문이다.

“ 자네 소설 쓰나 지금. 그런데 잠깐, 우리를 창조주라고 했다고?”

“ 네 분명히. 그걸 보낸 실체는...”

“ 실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엉. 실체는 우리야.”

K의 이 말에 김 박사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그냥 프로그램이라고.”

긴 침묵이 흘렀다. 김 박사는 순식간에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고장 난 컴퓨터 모니터처럼 명멸했다. 의심이 버럭 생겼다.

“ 혹시 자네가...”

K도 그 의심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목소리가 더 떨렸다.

“ 네? 무슨 말씀입니까? 제, 제, 제 설마 제가 이 프로그램을 빼돌리기라도 했다는 겁니 까? 네 제가요? 설마...”

그 표정에는 서운함과 분노도 섞여 있었다. 곧 이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김 박사는 직감적으로 K는 그럴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 자네 울고 있나? 미안하네. 그만 나도 모르게...”

김 박사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 이거 누가 알고 있나?”

“ 박사님과 저, 그리고 창에 메시지를 띄운 실체.”

K의 목소리가 조금 진정된 듯 들렸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는 계속 키보드를 쳤다. K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찾아내려 필사적이었다. 김 박사는 정신이 멍했다.

“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망했네. 망했어. 이게 세상에 나가면... 이건 범죄야. 이 프로그램 은 아직 80%정도밖에 완성이 안 됐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프랑켄스타인이 태어난 거야.”

“ 꼭 도깨비, 네 도깨비 짓 같습니다.”

김 박사는 눈앞이 깜깜했다. 일은 이미 글러버렸음을 직감했다.

‘ 도깨비짓이라고?’

김 박사가 결심을 했는지 냉정하게 말했다.

“ 이봐 K, 일단 이 통신기록을 다 지우게. 반드시 지워야 돼.”

<노트의요정 시리즈 전체보기>  김한, 7321디자인, 황인선, 이은경, 노트의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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