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불과 60년이란 짧은 시간에 급속한 사회 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를 겪었다. 각 세대는 한국사회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살아가지만,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세대 갈등을 보이고 있다.

기성세대의 경우 공동체주의와 권위주의를 지향하고,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와 탈권위주의를 추구한다.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공동체주의는 산업화, 도시화의 유입을 통하여 그 안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빠르게 변화했지만, 위계적인 공동체 문화 또한 여전히 남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게다가 서로의 연대감이 취약해 급기야 상대방을 비판하고 적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대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내가 겪은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봤다.

©픽사베이

먼저 내 취미란 취미는 모조리 없애준 사회에 감사함을 표한다. 어렸을 때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콩쿨을 준비하면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 조금 컸을 때는 운동을 좋아해 수영, 스쿼시,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 안 배워본 종목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달리기를 가장 잘했지만 이 역시 그만뒀다. 몇 년 전에는 시집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시를 쓰게 되었고 백일장을 다니며 그 상들로 인하여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예창작과를 다니며 시를 그만두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그만둔 계기는 전부 같다. 스펙을 쌓고 승자가 되라는 주변의 압박. 콩쿨에서 상을 받거나 시 대표로 메달을 받고 백일장에서 장원을 타면 주변의 모두가 기뻐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수상은 내게 기쁨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왔다. 상의 의미가 스스로 행복이 아닌 경력을 위한 것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뒷심이 약하다 비판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가 내게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그만두었냐’가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는 사회에서 궁금해 하지도, 궁금해 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왜 꼭 잘하고 있다가 멈춰서냐며 나를 질타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386세대에게는 이런 내가 어리고 무모해보이겠지만, 나는 스펙쌓기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하게 돼 버렸다. 내 취미와 특기를 모조리 스펙쌓기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는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가 싶었다. 근데 아니었다. 사회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386세대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를 지켜줄 바리케이드 따위는 없다. 스스로 살아남으려면 능력이 있어야 했고 우리는 그 능력을 갖기 위해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됐다. 신문 볼 여유,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 여행을 떠날 여유는 88만원 세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유’가 아닌 ‘이유’라면 모를까.

88만원 세대에게 청춘은 어느 누가 승자 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느냐의 싸움이다. 열정, 패기, 끈기, 모두 취업준비에 쏟아야한다는 뜻이다. 386세대 때의 청춘은 IMF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1세대 때로, 대학의 문턱도, 취업의 문턱도 굉장히 낮고 넓었다. 그들은 현재 사회 속에서 대기업 임직원이나 기득권층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힘은 막강하다.

반면 88만원 세대에게 있어서 대학의 문턱은 히말라야보다 높고, 취업의 문턱은 바늘구멍보다도 좁은 현실이다. 우리가 젊음과 청춘을 바치면서까지 얻어내고 싶은 것은 일자리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이미 자신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차지하고 있다. 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의 일자리를 다른 세대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로 서로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쩔 수 없는 수평폭력을 행하고 있다. 내가 밀쳐내야 하는 상대가 자신의 부모님이라는 것을 모른 채, 그들이 지켜내야 하는 자리가 자식들이라는 것을 모른 채 그렇게 우리는 세대끼리 끝이 없는 싸움을 행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세대들이 잊고 있는 것은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것. 내가 얻은 만큼 상대가 잃어야한다는 전제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제로섬 게임이 빈번한 사회 속에서 세대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단지 소통만으로 모든 세대갈등이 사라질 수는 없다.

하지만, 세대 간의 갈등의 실마리를 찾아 상대방을 이해하고 타협하는 일의 시작이 될 수는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감의 힘은 서로의 이익이 아니라 이미 논의된 사회적 협의와 공동의 가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더 이상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포지티브섬 게임이라는 전제로 변모시켜야한다.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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