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경기도 일산에 사는지라 한강변과 임진강변 자유로를 따라 종종 드라이브를 한다. 지난달 28일 오후 어머니를 모시고 자유로에 들어서니 승용차가 평소의 두세배나 많았다. 해방 직전 임진강 건너 경기도 장단으로 시집가셨던 올해 91세 어머니는 민간인 통제 구역인 옛 집터와 농토, 조상들의 산소를 곧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을 거라며 흥분하셨다.

남북 교류와 평화 기대 부풀어

남북한이 휴전선의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는 TV 보도를 보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어머니는 기대를 좀처럼 접으려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검색해 보니 임진각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4월 27일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김 위원장의 ‘평양냉면 쏘겠다’는 발언으로 유명 평양 냉면집의 냉면이 동이 나고, 편의점과 마트의 냉면 판매량도 2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던 우리 국민이 이렇듯 남북교류와 평화의 희망에 부푼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계기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8월 광복절 경축사와 9월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 등에서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자며 북한의 참가를 거듭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 올해 신년사에서 참가 및 대화 용의를 표명하며 화답했다. 문 대통령의 고집스러울 정도의 노력과 인내는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평창올림픽 북한 초청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로 열린 남북 대화의 봇물은 우리 정부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특사로 하는 특사단의 평양 방문과 김정은 위원장 면담으로 이어져 3월 6일 ‘4월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개최’를 이끌어냈다. 이어서 3월 9일 정의용 안보실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자,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5월 중 미·북 정상회담 개최 의향’을 결정했다. 김 위원장을 정상 회담으로 이끌어내는 데에는 미국과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도 주효했다. 그렇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감도 만만치 않았다.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북한의 핵 시험과 미사일 발사에 미국 국민의 85%가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해결할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제 북미 회담이 중요하다. ‘판문점 선언’에서 밝힌 대로 앞으로 남북이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 체제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 달려 있다. 사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곧 운전자 역할을 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위해(危害)를 가할 수 있는 무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상대를 겨냥해 위협을 해온 직접적인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의 성공을 거론하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 동시 이행이 관건

보통 판문점 선언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남과 북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것을 든다. 수구냉전세력들은 여기에 덧붙여 북한의 비핵화, 완전한 핵폐기가 없으면 남북 화해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비핵화의 구체적인 내용, 곧 비핵화 로드맵이 나온 뒤에 화해 조치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남한과 미국만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의 요구는 한마디로 체제 보장이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요구하는 것처럼, 북한 역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정권의 안전보장을 바란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언제든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에 대한 타격을 무력화하는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체제의 붕괴는 김정은 일가의 죽음은 물론 김일성 김정일의 ‘부관참시’로 이어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은 4·27 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은 일주일 전인 20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멈추겠다고 결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를 재확인하면서 “북부(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에 실행할 것이며,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 약속을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선제적 조치다.

이는 체제 보장만 된다면 핵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벼랑 끝 승부를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남한과 미국도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협상이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상대에게만 선제적이고 통 큰 결단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전략적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남한·미국과 북한, 선제적 평화 조치로 진정성 보여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핵무기 실험 중단을 포함한 현재와 미래의 핵은 물론 기왕의 핵시설, 핵무기와 핵물질 등 과거의 핵을 포기토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위협이 되는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축소나 중단 같은 ‘평화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때로는 선제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신년사에서 내놓은 ‘통일 대박론’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남북 대화를 사실상 포기하고 북한에 대한 적대감만 높이고 있는 가운데 통일 운운했으니 김 위원장으로서는 당연히 흡수 통일을 포함해 북한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뜬금없는 통일 대박론이 북한의 도발을 더 부추겼으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번 4·27 선언은 통일이 아니라 종전 및 평화 체제 구축이 우선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는 점에서 남북의 공감대가 클 뿐 아니라 평화 희망의 결실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정상 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착실히 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하고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무자비한 공포의 통치자이자 핵 도발을 자행하는 위험천만한 지도자’ 김 위원장은 환하게 웃으며 남쪽으로 내려온 지 하루 만에 자신이 체제 안정과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남한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정상 국가의 지도자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널리 각인되면 미국 역시 북한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북한의 체제 보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픽사베이

가짜 뉴스 성찰하고 평화를 위한 언론으로 나아가야

남북 화해 움직임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수구세력들은 요즘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그들은 북한 평창 올림픽 참가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극력 반대하면서 평화올림픽이 아니라 북한 체제를 선전해 주는 평양 올림픽을 열자는 것이냐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아직까지 반성하는 기색은 없어 보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7일 “결국 남북 정상 회담은 김정은과 문재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 평화쇼에 불과했다”고 비난했다. 홍 대표뿐 아니라 수구냉전세력들 역시 문재인 정부 주도로 남북이 평화 체제로 이행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 것 같다. 일부 보수 언론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종이 발표한 제 52차 홍보주일 담화 ‘가짜 뉴스 그리고 평화를 위한 언론’은 우리의 정치권과 언론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교종의 담화는 꼬투리를 잡아 헐뜯거나 일부 사실만 부각해 전체 현상을 왜곡하는 가짜뉴스는 타인을 불신하게 하고 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마침내 타인을 악마로 여기고 분쟁을 조장하기에 이른다고 얘기한다. 특히 언론인에게는 ‘뉴스의 수호자’로서 거짓 정보에서 벗어나야 할 중책이 있다고 강조한다. 출처의 정확성을 보장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보호하는 것은 선을 증진하고 신뢰를 형성하며 평화와 친교로 나아가는 참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자고 권유한다.

주님, 저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친교를 이루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의 숨은 해악을 깨닫고
악의에 찬 판단에서 벗어나며
다른 이들을 형제자매라고 말할 수 있게 저희를 도와주소서.
주님은 충실하시고 성실한 분이시니,
저희의 말이 온 누리에 좋은 씨앗이 되게 하소서.
외침이 있는 곳에 경청을,
혼란이 있는 곳에 화합을,
모호함이 있는 곳에 확실함을,
배척이 있는 곳에 연대를,
선동이 있는 곳에 절제를,
피상만 있는 곳에 문제의 본질을,
편견이 있는 곳에 신뢰를,
적의가 있는 곳에 존중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가져오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아멘.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고문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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