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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시작
김봉성 | 승인 2018.05.11 13:34

[논객닷컴=김봉성] 실연이 씁니다. 마음의 쓴 맛을 참기 힘들어 입 안으로 가져 오려고 술을 마시나 봅니다. 저는 술을 못 마셔서 실연을 씁니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뱉어냅니다.

실연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해운대발 대구행 열차 안에서 그녀에게 고백하고 그녀가 수락한 다음, 겨우 한 시간 반 남짓을 연인으로 있었을 뿐입니다. 물론 그 후에 더 많은 시간을 통화하고 우리는 다음 휴일의 만남을 약속했습니다. 그녀 때문에 시간이 더디게 흘렀는데 그녀는 4일 만에 우리 관계를 물렸습니다. 전날 밤 한 시간 반의 긴 통화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발랄하게 모닝콜로 저를 깨워주고 겨우 다섯 시간 만에 뜬금없이 말입니다.

©픽사베이

제가 그녀에게 고백한 의미를 그녀는 모릅니다. 저로서는 아브락사스로 향하는 새처럼 알을 깨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고백할 즈음, 저는 제가 노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서른을 넘기면서 서른 살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성공한 자들이 목구멍의 풀칠이 다급해진 도전자들에게 보내는 조롱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저의 포도청에 항복했습니다. 출근과 퇴근 사이에 아무 것도 희망하지 않으면 간단합니다. 삶이란 죽음으로 가는 무력감의 터널이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아닙니다. 알고 지내던 후배였고, 학원 일 때문에 최근에 다시 연락을 복구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연락이 잦아졌고, 따로 만나 밥을 먹었고,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만나고 ‘싶어진’ 것이 생겨나서 얼떨떨했습니다. 저는 습관대로 희망의 싹을 잘랐습니다. 희망이 이루어진 적 없는 경험은 희망하는 것 자체가 절망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뻗히는 감정보다 그녀와 저의 정보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주관이 뚜렷해 언젠가는 크게 부딪칠 것이라고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다가왔습니다. 서로 연락은 했지만 늘 용건을 가장한 것이었는데, 잠시 쉬는 중이라며 먼저 연락이 왔고, 자기 짜증을 들어주기를 바랐고, 잠시 잘 텐데 깨워달라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희망은 천천히 노인을 밀어냈습니다. 저는 바람 쐬러 가자고 말했고, 그녀는 단번에 승낙했습니다.

서른 살이 넘은 남녀가 약속을 잡아 바닷가에 간다는 사실에서 연애를 연상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는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움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포승줄에 묶여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를 주제에 무슨 연애냐는 양심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희망하지 않는, 저는 어느덧 노인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노인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안 되면 다시 안 보지 뭐’하는 낙심 덕분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차역에 내려 그녀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는 것을 보며 이 글을 구상했었습니다. 당시 제목은 [노인의 끝]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도서관에서 같이 책을 읽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와 떡볶이라도 만들어 먹고, 그녀를 업고 해변을 천천히 걷고 싶었습니다. 상상만 해도 웃을 수 있는 일들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노인이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그녀라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죽음을 지루하게 기다립니다. 동굴은 더 깊이 파고 무력감이 저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려고 합니다. 그녀는 저를 수락할 때부터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고, 저와 관계하는 사이 어떤 변수가 발생해 다른 일은 신경 쓸 수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제가 좀 더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제가 그녀의 ‘다른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낙심한 채로 무력감에 몸을 내맡기는 것, 그것이 노인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제 품에서 새색시처럼 수줍어하며 눈도 못 마주치던 그녀의 기억을 이불처럼 덮게 되겠지만, 당장은 좀 슬프겠습니다. 모 소설가는 사교육 시장은 먹물 막장이라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희망을 가졌으므로 벌을 받아야지요. 감히, 아직 꿈꿀 수 있는 누군가를 막장으로 끌어 내리려 하다니요. 베갯머리에서 문득 뜨거워지는 눈시울로 저는 저의 노인을 인증합니다. 눈가가 마르는 날, 나야 원래 이렇지 뭐, 하며 저는 죽음을 유유자적 기다리는 노인으로 돌아와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2살짜리 노인이 되었습니다. 당분간 행복해지지 않겠습니다. 

김봉성  nonsulroad_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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