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흰 꽃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주인공. 검은 옷을 입고 지팡이의 손잡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슬픈 얼굴의 상주.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웃음과 슬픔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장례식장 풍경. 그 너머로 조문 온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식탁들이 보인다. 그 위엔 하나같이 새하얀 접시와 그릇들이 놓여 있다. 그것들은 모두 일회용품들이다. 숟가락마저도 플라스틱이다. 젓가락은 당연히 일회용이고. 한 번 살다 죽는 인생을 보내는 자리에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일회용품들이 배웅 나와 있다. 주인과 함께 순장당하는 물건들처럼.

주부이기 때문에 설거지의 피곤함을 매일 느끼며 산다. 설거지만 없어도 주방 일이 덜 괴로울 것 같기도 하다. 설거지 대신 다 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 역시 일회용을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일회용 그릇에 담는 것은 사랑과 정성의 결여로 여겨져 사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금 피곤하긴 해도 설거지를 파업할 만큼 그릇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지지고 볶고 끓인 음식들을 묵묵히 담아내고 비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정리된 그릇들을 볼 때마다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순간들이 떠올라 웃거나 눈물 글썽일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설거지하는 시간은 단순히 그릇 씻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힐링 타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 사진 뒤에 말없이 누워 있는 주인공. 그에게도 수백 번 혹은 수천 번 무엇인가를 담고 씻긴 그릇과 같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사연이 침묵 속에 누워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사연도, 그래서 깊이도 없는 일회용 접시와 국그릇으로 배웅하는 세태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최소한 고인을 보내는 엄숙한 순간만이라도 일회용을 쓰지 않았으면 싶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함께 하자는 약속을 받고 뜨거운 불 속에서 태어난 도자기 그릇으로 배웅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픽사베이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마지막 자리만 일회용이 배웅하는 게 아니다. 생명을 마중하는 존재도 다름 아닌 일회용 기저귀다. 생의 시작과 끝에 일회용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생과 사 그 사이에도 우린 수없이 많은 일회용을 사용한다.

어느 날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서도 스테인리스 컵 대신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마시고 모아 둔 컵을 설거지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또 요즘은 얼마나 위생에 예민한가.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물론 내가 그 많은 설거지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일회용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들을 욕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것까지는 자제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소문 난 곰탕집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군말 없이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 일회용 풍조의 주범은 바로 대량 소비라는 깨달음이 왔다. 소량으로 조금씩만 대접한다면 일회용을 쓰라고 해도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속의 나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가. 하지만 이번에도 몰려드는 자괴감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삶이 살리는 일이어야 할진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죽이는 짓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편히’를 모토로 ‘더더더’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이 지구를 죽이는 짓만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살림하는 여자이다. 더 완벽한 살림꾼이고 싶다. 이 지구를 살리는 꾼이고 싶다. 그런데 잘난 척 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분위기 싸하게 만들기 싫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에 옮길 자신이 없어서 나도 일회용이다, 나도 일회용이다 하며 다소곳하게 종이컵에 담긴 물을 마시는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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