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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時代精神)
신영준 | 승인 2018.05.23 10:47

‘찰싹’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수시원서를 쓰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아침 조례시간에 뺨을 맞고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 생생하다. 나를 더욱 저항하게 했으며 끝까지 고집을 부리게 만들었던 그 따귀. ‘싫겠지만 담임의 말을 들어라.’ 하는 아이들과 ‘이제는 이런 시대가 아니다’라고 분개하는 아이들이 공존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후자에 속하는 아이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 과도기에 기존의 시대정신을 어기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내 성적으로는 터무니없었던 학교를 소위 말하는 ‘안전 빵’으로 합격하였다. 문제는 그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시대정신을 어기고 쟁취한 아주 작지만 달콤한 승리에 도취되어있었고 새내기 첫 엠티 때 동기들을 설득하여 정장을 입고 갔다.

©픽사베이

“일 돕기 싫어 작정했냐?”
“이런 미친 생각은 누가 했냐?”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이지만 남자 선배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야말로 대혼란이 왔다. 하지만 몇몇 여자 선배들은 “귀엽다”며 우리 곁에 와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또 다시 내가 틀리지 않았고 누군가는 내 편을 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정말 제멋대로 행동했다. 시대정신에 반항하는 것이 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길이라 여기며 이 사람 저 사람을 곤란하게 했고 속을 썩이며 나아갔다.

내 편협한 생각이 본격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던 때가 있다. 군대. 나는 이세상의 모든 시대정신을 어기려 했건만 대한민국의 입대는 거스를 수 없었고 거기서 살기위해 나는 순응해야만 했다.

처음이었다. 시대정신을 거스르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이 눈에 가시처럼 밟히고 그것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나는 어느새 후임들에게 규칙, 질서, 기강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엄한 선임이 되어있었고 완전히 거기에 젖어있을 때 나는 전역하였다.

전역 후 돌아간 학교는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때 그곳은 내가 알던 시대가 아니었다. 스무 살의 나보다 더 자유롭고 톡톡 튀는 아이들이 즐비했고 심지어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후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항상 흐름을 잘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여차저차 학내 광고학회의 학회장을 거쳐 학과의 학생회장 까지 역임했지만 솔직히 나는 끝까지 그 시절 그 아이들의 흐름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 시절 시대정신은 나에게 그냥 단어뿐인 이념의 껍데기였다.

졸업 후에는 시대정신 같은 고고한 것 따위는 머릿속에 없었다. 취업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꿈과 현실의 괴리에만 집중했다. 첫 직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인 작은 교육출판회사에서 나는 영상을 촬영하고 홍보자료를 만드는 일을 했다. 전공이나 꿈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정확하게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입사 2달 뒤. 나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내 시간을 조금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시대정신에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가치관에는 맞지 않다. 그저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 글을 쓰는 것. 시, 소설, 시나리오, 드라마대본 가릴 것 없이 써내려간다.

이제 와서는 시대정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상은 멈춰있지 않고 그 속에서 우리들도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 우리는 과연 이 격변 속에서 하나의 이념을 온전하게 공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시대정신이다’라고 말할 야망 있는 역사가는 나타날 것인가?

그럼 나는 왜 이제 와서 시대정신을 운운하며 따귀를 맞은 그날을 떠올리게 되었나? 답은 ‘사는 게 녹록치 않아서’ 이다. 그 시절 그 따귀를 맞지 않았다면 나는 이토록이나 저항하지 않고 살았을까? 제멋대로 살지 않았을까?

이 고민은 회사를 뛰쳐나온 이래 수천 번도 더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은 몇 시간, 또는 수 분 안에 종결된다. 그 따귀를 거스르지 않았다면 나는 없다. 나는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잘 살자는 말보다 행복하게 살자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우리의 시대정신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의 아이들이 시대정신이란 이름의 따귀를 맞지 않고도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해볼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감히 기대해본다. [논객닷컴=신영준] 

신영준  shindrom_fil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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