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춘풍이 부는 만큼이나 봄꽃 박람회와 장미축제가 춘풍에 성황이더니 5월 말에는 예술축제가 한창이다. 안산 거리예술제, 수원연극축제 그리고 춘천마임축제 등에 수십만 인파가 몰려 주말을 즐겼다. 수원연극축제는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숲속의 파티’를 개최해 시민들의 호평을 끌어냈고 안산도 거리예술 축제의 참맛을 보여줬다. 나는 2018년 제30회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으로서 일반인이 모를 마임축제 이야기를 두 개 소개하고 싶다.

공연을 보며 신이 나 춤추는 어린이와 배우와 하나되어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황인선

춘천문학공원의 요정 같던 아이

춘천시 북서쪽 의암호로 들어오는 북한강을 건너 춘천의 명소인 애니메이션 센터로 가는 길에 박사마을(박사가 많다고 해서 붙여짐)이 있고, 그 마을 주변에는 문학공원이 있다. 호변을 끼고 있는 아담한 잔디공원으로 춘천 문인들의 시와 명구가 새겨진 시비가 많다. 춘천마임축제는 물의도시, 봄의 도시, 불의 도시 3개로 구성되는데 올해 처음으로 ‘물의 도시: 아!수라장’은 소양강 처녀 테마를 메인으로 올려 호평을 받았다. 평일은 소외된 지역이나 단체를 찾아가는 봄의 도시 기간이다. 이번에 찾아간 지역은 춘천 문학공원이었다.

저녁 7시, 공연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공연은 세 번째인 ‘노 스피크 쇼’-봉 아크로배틱 공연이었다. 6미터 봉을 중심으로 아르헨티나 출신 커플의 현란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연기가 일품이었다. 주민들이 점점 모여들어 자리를 계속 메웠다. 나는 습관처럼 숫자를 센다. ‘백 명이나 될까’,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단연 많다. 점점 추워지는데도 흥에 웃고 묘기에 감탄하고 박수치고 잘 논다.

봉 공연이 끝난 시간은 밤 10시, 수변이라 바람도 불고 습도가 높아 밤은 더 춥다.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할 때 막공 ‘쉘 위 댄스’가 시작되었다. 일본영화 그 음악은 아니고 새로 만든 창작 춤 공연이다. 아르헨티나 팀 묘기에 비하면 단순소박하다. 하나 둘 떠나고 이제 남은 지역민들은 40여명. 그런데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여자아이와 아이 일행이 율동을 신나게 따라했다. 머리를 흔들고 어깨 들썩 엉덩이 요리조리... 어찌나 신나게 추던지 채근하던 부모들이 연신 정신없이 핸드폰을 누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여자아이가 무대에 올라 남자 댄서와 춤을 추는데 그 깜찍한 율동과 귀여움이라니! 요정이 따로 없다.

다른 아이들도 무대로 올라가고 졸지에 신(神)이 내린 공원이 되어 잔디에서 점잔빼던 엄마와 아들, 남편과 아내, 연인들도 짝을 이뤄 춤을 췄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음악만 나오면 흔든다. 그들 얼굴 표정은 무아지경. 흥에 겨워 축제 사무국장까지 신나게 춤을 춘다. 이게 뭐지, 혼란스럽다. 그러다가 반성이 된다. 과연 축제에 십만 명이 왔고 노랑머리 외국인이 왔느냐가 제일 중요한 건가? 참가한 사람들이 얼마나 진정 행복했는가, 축제가 이후 그들의 삶과 기억에 어떻게 개입했는가... 이것이 우선 아닐까?

다양한 불의 테마로 변주되는 춘천마임축제의 '놀라운 불' 퍼포먼스 ©황인선
뜨거운 불 ©황인선
따듯한 불 ©황인선

불, 위대한 마임

두 번째 이야기는 불의 도시에 핀 3개의 불이다. 춘천마임축제 하이라이트는 축제 마지막 날 의암호 수변공원에 펼쳐지는 ‘불의 도시: 도깨비 난장’이다. 불의 다양한 종류와 심취강도로는 한국 최대, 유일일 것이다. 누구는 그냥 불쇼 축제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불의 도시는 묻고 있다. “현대인에게 불은 무엇입니까?”라고. 반딧불, 초롱불, 화로 등으로 살던 우리는 어느덧 도시에서 전기, 전자렌지, 램프 같은 차가운 불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원래 인류에 각인된 불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불은 기능적인 동시에 신성한 기호이었고 위대한 선물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다. 불을 잊으면 인류의 기원도 잊게 된다. 그래서 춘천마임축제는 3개의 불을 피운다.

축제장 입구부터 피워진 ‘나를 불켜줘’ 봉투 속 불과 병속에 담긴 불(fire in bottle)의 길, 의자들을 놓고 가운데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과 꼬치구이 숯불은 따뜻한 불이다. 사람들은 불 사이를 걸으며 추억을 생각하고 장작불 주변에 모여 얘기하고 불판에 꼬치를 구워 소중한 사람에게 가져간다. 이 불은 위안을 주고 관계를 따뜻하게 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불이다. 두 번째는 뜨거운 불이다. 굉장한 열기의 뜨거움으로 흥분과 긴장을 일으킨다. 춘천마임축제에만 있는 두 대의 대형 화차(火車)와 곳곳에 설치된 불 설치물이 그 불이다. 가까이 하면 데인다. 그냥 그 붉고 위험한 열정만 느껴야 한다. 이 불은 에너지와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불이다.

마지막 불은 놀라운 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타이탄 신으로 인간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신성과 인간,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불! 영국 인류학자인 제임스. G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불 중에서 정화(淨火)를 주목한다. 영어로는 need-fire, wild fire. 고대에 재난이나 곤궁함을 막고 전염병을 막기 위해 피우던 불이다. 이 불은 불의 도시에서 놀라운 불로 재현되고 있다.

하늘로 치솟는 형형색색의 불꽃, 예술불꽃 화랑이 기획한 나이아가라 폭포 불, 다국적 아티스트들의 포이와 더블 스태프 파이어 쇼와 이번에 새로 구성한 ‘불의 신전’ 등이 그 불이다. 액을 쫓아내고 기원하는 신성의 불이며 현대의 불 테크놀로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세 개의 불이 피워진 불의 도시로 들어가 (Beyond the City) 잊었던 신성을 회복한다(Recover the City). 세 개의 불은 각각 이렇게 인간과 소통하며 회복시킨다. 춘천마임축제가 불의 도시로 끝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불은 시간과 관계를 이어주고 틔워주는 위대한 마임이다.

축제는 끝났어도 도시는 이제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한 여자아이에게 한 밤중 춤의 요정이 되었던 그 문학공원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수변공원 땅에 어느 5월의 밤 타오르던 세 개의 불을 기억할 것이니! 그러니 축제에 한 번 가보시라. 도시를 회복하시라.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8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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