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4]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일자리 면접을 본다. 그런거 해본지 35년쯤 된 것 같다. 이젠 자리가 바뀌었다. 꽤 오랜 세월 면접관자리에 있었는데, 이젠 수험생으로 앉아 있다. 살짝 긴장도 된다. 서류전형을 거쳐 일차 그룹면접을 하고, 며칠 뒤엔 무려 한시간 가까이 일대일 심층면접을 가졌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두차례 더 업무 적합성에 대한 검증과정이 남아 있다. 가만히 세어보니 서류전형에서 부터 최종합격자 발표까지 무려 다섯단계를 거친다. 그 어렵다는 대기업 신입사원 전형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렇다고 이 일자리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씩 일하면 월 50만원 남짓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근무 기한도 5~8개월이면 끝난다. 그런데 경쟁률이 5~6대 1이 될 만큼 지원자가 많다. 인생 2~3막을 준비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지원자들의 커리어도 만만치 않다. 정부기관, 대기업, 금융사, 교육계 등에서 30년 안팎 일하고 은퇴한 사람이 대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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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일자린데 그렇게...?

은퇴자들의 인생2막을 도울 목적으로 서울시 50+재단에서 내놓은 사회공헌 일자리인 ‘보람일자리’다. 50+세대가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두 마리 토끼, 즉 사회적 가치와 일자리를 동시에 잡아 활기차고 안정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를 갖는다. 지금 모집하고 있는 ‘보람일자리’는 ‘50+SE펠로우십’과 ‘50+NPO펠로우십’이다. 선발절차를 거쳐 ‘펠로우(동료)’가 되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짝을 이룬 SE(social economic :사회적경제) 또는 NPO(non profit organization: 비영리단체)를 돕는 일을 하게 된다. 펠로우는 정부로부터 약간의 활동비를 받으면서 일로써 사회에 기여하고, 이를 자신의 새로운 커리어 탐색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낀다. 펠로우활동에서의 얻은 경험과 새로운 지식, 네트워크 등을 추후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창업, NPO활동 등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2막에는 제3섹터에서 앙코르커리어(Encore career)를 모색하라’

쉽게 말해 인생 후반전에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분야나 공익단체 같은 곳에서 일함으로써 지속적인 수입을 얻으면서 의미와 사회적가치도 함께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앙코르커리어는 지속적인 수입원이 되면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는 3박자를 갖춘 일거리다. 고령자를 위한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미국의 마크 프리드먼이 2009년 ‘앙코르’라는 책을 통해 ‘앙코르 커리어’의 개념을 소개했다. 여기서 커리어란 단순히 직업이나 경력이 아닌 개인의 인생이나 삶의 방식이라는 광의의 개념이다. 돈보다는 생활의 질이 우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생 후반전에 ‘앙코르커리어’를 원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재취업의 어려움이나 홀로 창업했을 때의 경제적위험을 반영한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은퇴자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100세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후반전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하나, 꼭 돈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인생이 후반전으로 넘어가면 무슨 일을 하느냐(what) 보다는 왜 하느냐(why)가 중요해진다. 명함이 내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명함이 정체성이라면 퇴직과 함께 그의 인생도 사라져 버리는 비참한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깨우친 순간부터 더 이상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에 대한 관점도 그렇다. 돈이 없으면 불편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돈이 행복을 좌우하는 절대 요소가 아님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기에 단지 돈 때문에 일하지는 않겠다는 사람이 많아진다. 실제로 한 민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신중년이라 불리우는 우리나라 5060세대의 80% 이상이 근로를 희망하고 있지만, 퇴직 후 일하고 싶은 이유 중 경제적인 이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정도에 그친다. 나머지 70%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또는 능력과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일을 하기 원한다. 신중년 열명 중 일곱명은 삶의 질이나 사회적가치 때문에 계속 일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인생2막에 앙코르커리어를 만들어가기에 적합한 곳으로 ‘제3섹터’를 권한다. 제3섹터야 말로 앙코르커리어를 가능케 하는 블루오션이라는 것이다.

제3섹터란 무엇인가?

한 나라의 ‘공적 공동체’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누고, 정부 기구가 대표하는 국가 영역을 제1섹터, 영리 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영역을 제2섹터라 한다. 나머지 하나가 제3섹터인데, 국가나 기업이 다하지 못하는 공익적 역할을 국민 스스로 수행하는 ‘시민사회 영역’이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나 시장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제3섹터를 통해 풀어 가는 것이다. 제 3섹터의 확장을 통해 사회적가치가 창출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어 선진국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제3섹터 육성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50+ 프로그램을 통해 시니어들이 인생2막의 새로운 무대를 제3섹터에서 펼쳐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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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에는 슬래시커리어(slash career)를 만들어 가라’

후반전에 앞서 잠시 고민했던 게 있다. 전반전에 했던 일을 연장해 나가는 쪽으로 재취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앙코르커리어를 모색해 나갈 것인가. 당장에는 재취업이 좋아 보이지만 길게 보면 앙코르커리어가 더 의미있어 보인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둘 중에 한 길을 택해 나가는 데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던 가운데 서울시 50+서부캠퍼스의 앙코르커리어 특강에서 “후반전에는 슬래시커리어를 만들어 가는게 좋다”는 말을 듣고 거기서 답을 찾았다. 애써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 고민할 필요없이 슬래시커리어를 만들어 가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슬래시커리어는 문자 그대로 명함에 슬래시(빗금:/)를 그려 넣으면서 여러개의 직업을 동시에 갖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이름밑의 직업난에

○○○○편집인/50+SE펠로우/그린코디네이터 등으로 써넣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명함 하나에 여러개의 직업을 써 갖고 다니다가는 사기꾼 취급당하기 딱 좋았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 중에는 뚜렷한 직업이 없는 떠돌이거나 여기저기 이름 걸어놓고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인생2막의 일자리는 사회적가치와 경제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앙코르커리어를 슬래시커리어로 만들어가는게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후반전의 일은 무엇보다도 내가 즐겁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그런만큼 예전처럼 한가지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 몇 개를 추려서 조금씩 동시에 해 나갈 수 있다면 만족도를 극대화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75세 노년기에 들기전까지 일을 그치지 않고 이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후반전을 앞두고 진로탐색기에 들어선지 두어달이 지났다.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 한 동안 잊고 있었던 내 삶의 비전이 다시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실로 오랜만의 감정이다. 나는 지금 슬래시커리어로 세 가지 정도의 일을 구상하고 있다. 먼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보람일자리에 일주일에 이틀 정도를 쓸 생각이다.

사회공헌적 의미가 크다. 여기에다 전반전의 경험을 살려 주 이틀 정도는 언론쪽 일을 해볼까 한다. 때마침 한 후배가 같이 일할 것을 권유해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경제적으로 조금 보탬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꽃 가꾸기를 좋아하는 취미와 일을 결합한 그린코디네이터가 되는 것이다.
열심히 배워서 원예도 하고 강의도 하는 직업이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정도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러다보면 생활이 다시 너무 부산스러워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나 너무 바빠지면 일을 줄일 것이다. 이제는 일이 나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일을 지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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