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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찹쌀떡을 꼭꼭 씹어 먹는다.[김경빈의 위로의 맛] 오해가 아닌 것과 가벼운 오해
김경빈 | 승인 2018.06.12 11:44

[논객닷컴=김경빈] 서구라고 부르는 이들에게서 개화기를 맞이한 아시아 국가들은 보통 ‘서구 사회의 산물에 대한 막연한 사대주의’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개화기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기술적으로 발전된 것,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련돼 보이는 것,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저히 적어 귀한 것, 빈국에게 쏟아지는 선진강대국의 것’ 등등이 서구 문물이었으니 그런 사대주의의 시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지금에 와서도 그 사대주의를 당연하다고는 할 수 없는 거다. ‘한국이 최고야!’ 하는 속칭 ‘국뽕’을 들이키자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그냥 가벼운 오해나 가볍게 좀 풀어보자는 얘기다.

©플리커

그런 가벼운 오해 중 하나가 바로 빵과 떡에 관한 것이다. 보통 ‘빵은 외국 음식, 떡은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것은 오해가 아니다. 굳이 BC 3000년 경에 바빌로니아인들이 최초의 빵을 구워 먹었을 것 같다는 추측이나, 효모를 넣은 희고 부드러운 빵은 BC 2000년경에 이집트인들이 구워 먹었다는 아주아주 오래된 얘기를 할 필요도 없이, 현대에 와서도 빵은 서구 사회의 주식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처음 빵이 들어온 것이 조선 말엽 선교사들 덕분이라고 하니 적어도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럼 떡은 어떤가? 떡의 그 쫀득쫀득한 찰기처럼, 떡은 정말 우리 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청동기 시대 유물인 나진 초도 패총에서 떡시루가 발견되었다고 하면 말 다한 셈이다. 설에는 떡국을 먹어야 제대로 나이를 먹었다 할 수 있고, 동짓날엔 찹쌀 새알이 동동 뜬 팥죽을 먹는다. 현대에 와서 잘 지키지는 않지만 세시풍속, 절기마다 먹는 떡이 수십 종류는 된다. 과거 궁중 식사의 후식에 떡이 있었으니, 한국판 고급 디저트의 시초가 또한 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빵은 외국 음식, 떡은 우리나라 음식’이라는 생각은 굳이 오해랄 것도 없는 거다.

다만 이런 가벼운 오해는 종종 들린다. ‘빵은 젊고, 세련됐고, 아기자기하고, 평소에 즐기고...’, ‘떡은 어르신 음식이고, 촌스럽고, 무슨 날에나 먹고...’ 대부분의 베이커리들이 세련된 인테리어인데 반해 몇몇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여전히 ‘방앗간’ 느낌이 강한 떡집의 외관이 이런 오해에 힘을 실어주는 사실이다. 하지만 ‘빵’과 ‘떡’이라는 음식 자체에만 집중하면,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이 오해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이 빵이나 떡이나 그 역사를 되짚어보면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둘 다 아주 오랜 기원을 지닌 음식이다. 그러니 굳이 빵은 젊고, 떡은 늙었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또 떡은 빵만큼이나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다. 베이커리에 들러 진열된 수십 가지의 빵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처럼, 어느 떡집에 들러 그렇게 떡들을 둘러본 적이 있는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떡들을 눈으로 하나하나 짚어본 적이.

떡은 만드는 방식에 따라 찌는 떡(송편, 백설기, 감자떡 등등), 치는 떡(인절미, 꿀떡 등등), 지지는 떡(빙떡, 부꾸미, 메밀총떡 등등), 삶는 떡(경단, 팥죽 새알심 등등)의 4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각 방식의 대표적인 떡 외에도 시루떡, 인절미, 쑥떡, 각종 화전, 구름떡, 두텁떡 등등 정말 수십 가지 종류의 떡이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떡의 현대화’에 앞장 서는 여러 업체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비주얼과 맛의 떡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단팥 앙금이 아닌 바나나, 망고 등 과일 맛을 더한 색색의 찹쌀떡이나 카스테라 빵 사이에 찹쌀떡을 샌딩한 ‘떡 샌드’, 갖가지 그림이나 캐릭터를 그려낸 ‘떡 케이크’까지. 사실 ‘~의 현대화’라는 수식어 자체가 ‘현대적이지 않았던 것’이라는 반증이긴 하지만, 그 부단한 노력 덕에 이제 더 이상 빵과 떡 그 자체를 두고 부당한 오해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버지와 찹쌀떡

간식에 관한 우리 아버지의 식성은 여느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비비빅이나 아맛나. 과자는 맛동산, 빵은 단팥빵, 그리고 떡은 찹쌀떡. 팥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주요 간식 리스트에서도 팥 냄새가 고소하게 나는 것 같다. 이런 아버지의 식성을 잘 알고 있는 엄마는, 어릴 적 우리가 먹을 간식을 사오면서도 꼭 아버지의 주요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두어 개씩 담아 오시곤 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게도 찹쌀떡만큼은 웬만한 베이커리에서도 팔았던 것 같다. 왜일까?) 때문에 우리 집 주방 한 켠에 과자나 빵 같은 간식을 담아두는 바구니에는 늘 아버지 몫의 간식이 있었다.

하루는 그 바구니에 단팥빵과 찹쌀떡이 동시에 있던 어느 날. 내 생각으로는 나름 고민이 될 법도 한 조합이었다. 비빔냉면과 물냉면,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 짜장면과 짬뽕 같은 조합이랄까. (물론 최상은 둘 다 먹어치우는 거지만!) 그런데 아버지는 의외로, 아무 고민 없이, 찹쌀떡을 덥석 집으셨다. 마실 것도 챙기지 않으시고 두 입 만에 찹쌀떡 하나를 와구와구 씹으셨다. 아주 꼭꼭.

나란히 앉아 TV를 보다가, 찹쌀떡을 다 드신 아버지가 대뜸 “빈아, 떡이 빵보다 좋은 점이 뭔 줄 아나?” 물으셨다. 막 고등학교 입학했던, 떡보다 빵을 훨씬 좋아하던 내가 그걸 알고 있을 리가. 대답도 않고 멀뚱히 있으니 아버지가 이어 말하셨다. “꼭꼭 씹어야 된다는 기다. 음식이 원래 그렇지만, 살다 보면은 꼭꼭 씹어 삼켜야 할 일들이 참 많은데 사람은 자꾸 그걸 까먹거든. 떡을 먹을 때는 까먹을 수가 없지.” 그때는 이게 뭔 뜻인가, 싶었던 말씀이 살다 보니 와 닿는다.

살아가며 겪는 일들이 어찌 모두 부드러운 카스테라, 꿀떡꿀떡 넘어가는 스프, 시원한 사이다 같겠는가. 때로 어떤 일들은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아도 끝까지 꼭꼭 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꼭꼭 씹어 삼켜야 뒤탈도 나지 않는 그런 것들이. 겨울바람을 뚫고 묵직하고 외롭게 허공에 울리던 찹쌀떡 장수의 “찹쌀~떠억! 망개~떠억!” 소리는 이제 듣기 어려워졌지만, 가끔은 베이커리에서라도 찹쌀떡을 사 먹고 싶어졌다. 꼭꼭 씹으며, 뭔가 내가 대충 삼켜버린 것들이 있진 않았나 돌이켜 보면서. 

 김경빈

 글로 밥 벌어먹는 서른. 라디오 작가 겸 칼럼니스트, 시집 <다시, 다 詩>의 저자.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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