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2015년 9월 세 살배기 난민의 주검과 헝가리 기자의 ‘난민 쓰러뜨리기’는 우리의 이기주의와 배타성을 질타하고 성찰하게 했다. 9월 2일(이하 현지 시각) 아침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안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세 살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 사진은 전 세계를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다. 빨간 티셔츠, 청색 반바지 차림으로 모래톱에 얼굴이 반쯤 묻힌 모습이었다.

2015년 9월2일 터키 보드룸해안에 익사한 채 밀려온 시리아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 ©위키피디아

세 살 꼬마 난민 죽음, 전 세계 슬픔 빠트려

아일란 가족은 내전 중인 시리아를 떠나 육로로 터키에 도착한 뒤 그리스에 가려고 소형 보트에 몸을 실었다가 보트가 뒤집혀 변을 당했다. 5살짜리 형과 엄마의 시신도 주변 해안가에서 발견됐다. 며칠 후 캐나다에 사는 고모가 공개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일란 사진은 그의 주검을 아프게 각인시켰다. 아일란의 죽음이 보도되자 전 세계 누리꾼들이 애도했다. 독일은 즉각 국경을 개방하고 자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나섰다. 영국에서는 난민 수용을 늘릴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수십만 명이 서명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9월 8일, 헝가리와 세르비아 국경지대에서 헝가리 N1TV의 여성 카메라 기자가 경찰을 피해 아이를 안고 달아나는 시리아 난민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그 기자는 다른 난민 소녀들도 걷어찼다. 현장을 취재하던 독일 기자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이 동영상은 곧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에 확산돼 공분을 일으켰다. 헝가리 기자는 회사에서 해고된 후 유죄판결을 받았다.

헝가리 기자와 트럼프 대통령도 비인간적 처사로 비난 받아

얼마 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난을 산 것도 궤를 같이 한다. 대통령 후보 시절 멕시코의 불법 입국자를 추방하고 무슬림을 통제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국내외에서 뭇매를 맞은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와 동반 자녀 강제 격리수용 정책을 펴다가 지난달 20일 격리수용 정책을 철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기를 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부터 멕시코 국경에서 체포한 밀입국자들은 예외 없이 기소해 구금하고 동반 자녀들은 보호시설에 보내는 격리 정책을 시행했다. 부모와 자녀의 강제 이별 같은 비인간적인 정책이 있을까.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부짖었고, 일부 부모는 아이들을 돌려주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애원했다고 한다. 온두라스에서 온 30대 남성은 아내와 아이와 강제 분리된 것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오죽하면 부인 멜라니아까지 반대했을까. 멜라니아는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철회한 뒤에도 국민적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강제 격리된 어린이 보호시설을 방문했다.

제주도 입국한 예멘인들, 난민 문제 논란 불러

최근 제주에서 시작된 예멘 난민 문제가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올 들어 제주도에 무비자로 들어온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은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519명으로 지난해 42명의 10배 이상이다. 대부분 무비자로 90일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연장이 되지 않아 직항 노선을 타고 제주까지 왔다. 지난달 30일 저녁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근처에서 난민 수용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예멘 난민을 둘러싼 국민 청원 70여 건 중 수용에 찬성하는 글은 소수에 불과하고 불법 난민 급증을 우려하거나 수용에 반대하는 글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난민법 폐지’ 주장에 지지를 표명한 사람이 38만명을 넘었다.

난민의 가혹한 상황 널리 알릴 필요

난민 보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큰 것은 첫째 그들이 겪은 고통과 참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이 크기 때문이다. 사지(死地)와 다름 없는 내전과 분쟁 지역에서 그들이 겪은 폭력과 절망과 트라우마가 제대로 알려졌다면, 꼬마 난민 아일란의 죽음이 전 세계의 연민을 불러 일으켰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성숙한 공감 본능이 작동할 것이다. 정부와 제주도, 관련 단체는 예멘의 분쟁 상황과 가혹한 처지를 좀 더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두 번째는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인 이기심 탓이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게 행동하도록 자기 중심성이 각인돼 있다. 주변 사람이나 종족에게는 이기심과 이타심을 동시에 발휘한다. 경쟁을 하면서도 외부의 위협을 받으면 힘을 합쳐 싸운다. 외부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다.

난민 반대론자들은 난민의 입국이 급증하면 국내 일자리 부족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국민 세금으로 그들을 지원할 수밖에 없고 범죄 우려도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예멘 난민 대부분이 무슬림이라는 점도 난민 수용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 아일란의 죽음, 헝가리 기자의 어이없는 다리 걸기,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공약과 불법 이민자 자녀 격리 정책에 대해선 분노하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난민 수용이 우리 일이 되니 헝가리 기자와 트럼프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난민 인정율은 세계 평균의 10분의 1 수준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2013년 7월1일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발효시켰다. 그 후 파키스탄, 이집트, 시리아, 나이지리아, 우간다, 중국, 미얀마,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등 정치· 종교· 민족 분쟁이 극심한 나라 출신들의 입국이 크게 늘었다. 한데 현재 난민 인정률은 4.1%로 세계의 평균 난민 인정율 38%의 10분의 1 수준이다. 난민 협약과 난민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불법 취업을 우려해 난민 인정 심사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도 일제 강점기에 연해주와 만주 등으로 떠돌아 다녔다. 한국전쟁 때에는 여러 외국의 도움을 받았고 전쟁 뒤에는 고아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입양됐다. 그런 과거가 있는 우리가 다른 나라 국민의 어려움에 대해 나 몰라라하는 것은 사실상 국경이 사라지고 있는 지구촌 시대의 일원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국내 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다.

빈부 격차 확대도 난민 수용 어렵게 만들어

세 번째로는 확대되고 있는 빈부 격차와 불평등도 새겨야 한다. 트럼프가 갑작스레 부상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불법 이민자와 무슬림에게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소득·저학력층의 정서를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노르웨이 등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한 것은 일자리와 부를 빼앗아가는 이민자들에 대한 중하위 계층의 분노가 그 기반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미국보다도 심각할 뿐 아니라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반 이민 정서와 혐오가 만만치 않고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법무부는 지난달 초 예멘인의 제주도 무비자 입국을 불허하고 입국한 이들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출도를 제한했다. 이는 난민협약 정신에 어긋난다. 지난달 29일에는 난민 제도를 악용해 불법 취업하는 일이 없도록 난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난민 심사 기간 단축과 난민 심판 절차의 간소화도 약속했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 다하는 난민 정책 펴야

정부의 어려움과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난민 반대론이 만만치 않음을 외면할 수 없다. 난민 반대론으로 우익 세력이 결집할 수도 있다. 더욱이 빈부 격차 확대는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난민을 홀대하면 국제사회의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소탐대실을 초래할 수 있다. 지구촌 일원으로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난민의 지위와 처우 등을 규정한 난민법을 폐지할 수는 없다. 출도 제한 조치도 완화해야 한다. 세계의 분쟁 지역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난민은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도 점차 난민 수용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래를 내다보며 국제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면서 국내에서도 난민 수용 반대론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중장기 난민정책을 세워야 한다. 먼저 난민 신청자들이 처한 상황을 좀 더 널리 알려 국민의 연민과 성숙한 공감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공동대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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