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6]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영화 ‘인턴’을 다시 봤다. 예전에 한 번 본 영화인데, 다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3년 전인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감동이 있었다. “아, 멋지게 사는구나. 나이 들어 이렇게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 수도 있구나...” 나도 이제 그처럼 시니어 인턴 초년병이 되어 영화를 되새김질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해 본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영화에서 70세 시니어 인턴으로 나오는 로버트 드니로는 30년 전에 영화 ‘미션’을 볼 때부터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더 없이 멋지다.

1년 전 나 자신도 인생 1막을 마치고 은퇴한 뒤, 이 영화가 종종 생각났다. 내 인생 2막도 영화 속 주인공 벤(로버트 드니로 扮)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런데 정말 그 기회가 내게도 주어졌다. 한 달 전부터 온라인 법률서비스기업의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고 느낀 것인데, 지금 내가 일하는 곳의 분위기가 영화 속 회사와 흡사하다. 자유스러움과 열정, 유쾌함, 그리고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젊음이 잘 어우러져 있다. 사랑스러운 젊은이들로 가득 한곳. 주어진 무대는 더 없이 완벽해 보인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 걸까? 언감생심, 내가 영화 주인공처럼 만능 시니어 인턴이 될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시즌에 내가 행복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쉬움과 후회가 남지 않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내 인생이 이젠 그랬으면 한다.

영화 ‘인턴’스틸컷 ⓒ네이버영화

내가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역 근처에 있는 법률서비스 소셜벤처 ‘로앤컴퍼니’에 시니어 인턴으로 첫 출근 한 날은 지난 7월6일. 며칠 있으면 한 달이다. 50+서부캠퍼스에서 운용하는 보람일자리 중 SE(사회적경제)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참여한데 따른 것이다. 이곳에 첫 출근하기 전날 밤엔 잠을 설쳤다. 어릴 적 소풍가기 전날 밤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이 회사에 대한 기사를 다 찾아 읽었다. 로톡(Law Talk)이라는 법률 플랫폼을 개발해 운영하면서, 법률적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의 조언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이 특히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를 위해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변호사가 1000명이 넘고, 로톡 사이트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2만5천명에 달한다.

내가 이곳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것이 곧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생긴다. 여기에다 ‘로톡뉴스’라는 인터넷신문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가슴 뛰게 한다. 내가 평생 해온 일이 신문 만드는 일이 아니었던가. 누군가가 그랬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과 가장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이 같은 것이라면 그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생 2막의 첫 발을 그런 행복을 안고 내디딜 수 있게 됐으니, 나는 진정 행운아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잘 해내고 있는 걸까?

영화 속 벤은 외견상 확실한 ‘꼰대’다. 70살 먹은 머리 허연 할아버지다. 인턴 면접 때 30대 젊은 면접관은 그에게 대학시절 전공을 물으면서 “혹시 기억나시면 말해주세요”라고 할 정도다. 그의 보스인 CEO는 답답한 정장차림을 고집하는 그에서 넥타이를 벗어 던지길 권유하면서 “정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튀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벤이 곧 회사 동료들 사이에 “구형이지만 멋진 분”으로 인식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나. 오늘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는 꼭 해야 할 말은 하지만, 해서는 안 될 말은 절대 않는다. 사장실에 오래 머물다 나온 그에게 한 직원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말해달라고 주문한다. 그러자 그는 “한 마디도 못 들었어요”라고 응수한다. 그렇다. 혀를 제어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그 관문을 멋지게 통과했다. 시니어 인턴 첫 출근을 앞둔 나에게 아내가 해준 말도 그것이었다. “가급적 말은 줄이세요. 꼭 필요한 말만 하도록 하세요” 그런데 나는 지금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벤을 보고 있노라니 시니어 인턴으로써 닮고 싶은 게 참 많아진다. 그가 ‘구형이지만 멋진 분’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일단 로버트 드니로는 잘 생긴 할아버지다. 멋지게 늙으셨다. 하지만 정말 닮고 싶은 것은 그의 처신이다. 그의 말과 표정, 마음과 행동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배려’와 ‘친절’이다. 그는 사무실에서 마주하는 모든 이의 삶에 대해 배려하고 격려한다. 사내연애가 뜻대로 안 풀려 고민하는 찌질이 청년직원, 애써 일하지만 인정받지 못해 속상해하는 사장 여비서, 남편의 외도로 절망하는 CEO까지. 그는 왜 늘 손수건을 갖고 다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손수건은 나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실제로 그는 자기의 손수건을 다른 사람의 눈물 닦아주는 용도로 주로 사용한다. 그는 능히 배려의 아이콘이라 할만 했다.

요즘 와서 깨닫는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지금껏 그걸 모르고 살아다는 것을. 예전엔 돈이 많아야 베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눈과 입, 표정, 마음으로도 얼마든지 베풀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것들은 재물과 달리 아무리 퍼주어도 바닥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살면서 이것들의 주는데 너무 인색했다. 집에서 그랬고, 일터에서 그랬다. 벤이 보여준 배려와 친절의 밑바탕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내 안에도 그런 사랑이 있어 흘러나가길 기도한다. 내 마음이 더욱 낮아지길 기도한다. “I’m nothing, You’re everything.”

ⓒ픽사베이

“청바지 입은 꼰대가 되지 말자” 시니어 인턴을 시작하면서 마음속 깊이 새긴 좌우명이다. 청바지 입은 꼰대. ‘겉은 그럴싸하게 젊은이 흉내 내려하는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꼰대’를 비꼬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말까지 회자되니, 내가 잘 못 처신하면 나이든 사람들 도매금으로 웃음거리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들로부터 꼰대취급 받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영화에서 30대 여성 CEO인 줄스(앤 해서웨이 扮)는 자기 밑에 배속된 시니어 인턴 벤을 거부하며 싫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노인은 싫다. 우리 엄마하고도 관계가 안 좋다”고 말한다. 줄스의 이런 감정은 어쩌면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보편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노인은 그냥 거북스럽다는 얘기일 것이다. 거기에다 나이든 이가 가끔 꼰대 짓까지 한다. 그러다 보면 젊은이와 시니어 인턴의 만남이 영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실제 기업체에서 시니어 인턴이 꼰대로 전락하는 지름길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오지랖이 넓은 것’이 제일 문제 된다고 경고한다.

오지랖은 옷의 앞자락이다. 넓은 오지랖은 자기 몸 뿐 아니라 다른 옷까지 넓게 덮는다. 그래서 남의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아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지난 수십 년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 온 시니어 인턴이 아직 연륜이 적은 스타트업의 업무를 지켜보면 뭔가 얘기해 주고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꼰대의 쓸데없는 간섭’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시니어 인턴을 현장에 투입하기에 앞서 갖는 50+캠퍼스의 교육에서 전문 강사들은 꼰대가 되지 않는 방안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오지랖을 조심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젊은 시절 얘기,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강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젊은이들은 당신네들의 과거에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어떤 이는 이런 말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30대가 달려 나갈 수 있게 나이 들수록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 ‘인턴’을 보면서 이러한 조언들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에서 벤은 업무에 힘들어 하면서도 자신의 도움제안에 경계심을 보이는 사장 여비서 베키에게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며 다가간다. 그녀가 뒷걸음질 치자 벤은 “그냥 실험삼아 내가 도와주게 해주세요”라며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오지랖도 보통 오지랖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처음엔 ‘고령자 인턴’이라 부르며 마뜩치 않게 여겼던 CEO 줄스까지 나중엔 그를 ‘절친 인턴“이라 고쳐 부르게 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벤은 그의 보스인 줄스가 자신의 책상 앞으로 걸어 올 때마다 매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양복 앞깃을 여밀 만큼 깍듯이 예의를 갖춘다. 그러면서도 벤은 사무실내 모든 사람과 속내를 트고 지낼 만큼 금방 가까워진다. 과거 전화번호부를 제작하는 회사에 40년간 근무하다 부사장으로 퇴직한 그의 경력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성실성과 적극성,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이 그의 재산이고 힘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자칫 ‘오지랖 넓은 사람’ 으로 비쳐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벤의 넓은 오지랖은 관심과 배려, 성실과 능력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다. 이에 비춰볼 때 오지랖이라는 것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네이버 지식백과의 우리말 풀이사전은 ‘오지랖’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가슴이 넓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폭’이라고도 했다. 오늘날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제 몸과 관계없는 일에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세태가 문제라고 사전은 기록한다. 그러고 보니 ‘꼰대’의 기준점이 오지랖 말고 다른 곳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말 하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 때문에 꼰대가 되는 경우가 많을지 모른다. 젊은이들 일에 간섭하는 것 못지않게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 게 그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노인과 어른의 차이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 주느냐의 차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 때문에 꼰대 소리 듣는 게 아니라, 나의 말을 안 들어 주는 것 때문에 꼰대 반열에 오른다는 얘기다. 결국 로버트 드니로와 꼰대의 갈림길 한쪽에는 ‘공감’과 ‘경청’이 자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인턴’ 스틸컷 ⓒ네이버영화

어찌 됐건 시니어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나의 오지랖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가 내게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건 내가 경험해 봐서 조금 아는데”라며 오지랖을 펼친다면 상대방은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아무리 선의였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쪽이 생각하기에 따라 썩 유쾌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SE펠로우 교육 받은 때 강사는 “현장에 가거든 절대로 상대가 묻기 전에는 아는 척하지 말고, 물어 온다면 성심껏 답변하라”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이 말에 십분 공감한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고민이 생긴다. 그럴 경우 ‘나이 든 사람이 뭘 더 바랄게 있다고 그렇게 소극적으로 사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경험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 경험이 항상 옳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길이 있어 보인다면 의견을 말해 주는 게 나이든 사람의 도리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벤은 그렇게 했기에 젊은이들과 진실 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영화 인턴은 이렇게 얘기한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Experience never goes out of fashion.”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 경험은 절대 시대에 뒤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정말 좋은 의미로, 진정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묻지도 않은 일에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누구는 로버트 드니로가 되고, 누구는 꼰대 소릴 듣게 된다. 어떤 차이에서 일까? 복잡하게 접근한다면 너무나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플한 게 아름답다고 했다. 절대 진리가 존재한다. ‘사랑’이 답이다. 어떤 상황, 어떤 문제 앞에서 펼친 오지랖이었건 거기에 사랑이 담겨 있다면 그는 분명 로버트 드니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영양가 있는 얘기라도 거기에 사랑이 빠져 있다면 절대로 ‘꼰대의 주제 넘는 간섭’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과연 지금 내 안에는 이런 사랑이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벤은 자신의 시니어 인턴생활을 ‘신세계’로 표현했다. 그렇다. 이건 분명 내게도 신세계다. 몇 년 만에 가슴이 다시 뛰는 것을 느낀다.

적어도 내게는 인생에 새로운 시즌이 열리고 있다는 시그널로 들린다. 나의 인생 2막의 첫 발이 내디뎌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죽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나의 꿈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인생의 꿈은 브릿지(Bridge)가 되는 것이었다. 1970대 초에 Simon & Garfunkel이 부른 팝송 Bridge over troubled water(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는 ‘내가 험한 물결위에 놓인 다리가 되어 드릴 께요’ 라고 노래한다. 그런 삶을 꿈꿔왔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했던 탓이다. 낮은 곳에 있어야 할 다리가 스스로 높아지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인생 2막을 열어가면서 그 꿈이 다시 꿈틀거린다. 그래서 교육받은 때 만들어준 명함의 내 이름 앞에 ‘징검다리’라고 적어 넣었다. 영종대교나 남해대교 같은 큰 다리가 아니다. 어느 시골 이름 없는 개울에 놓인 작은 징검다리가 돼, 누군가 물이 불어난 개울을 건널 때 그의 발밑을 받쳐주고 싶다. 이제야 내 인생이 가야할 곳으로 방향을 잡아 가는 것 같다. 하프타임에 들어서면서 인생 후반전은 의미 중심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일단 기분 좋은 스타트를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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