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오피니언타임스=허승화] 나는 예술고등학교와 예술대학교를 나왔다. 지나고 보면 내가 있던 곳에는 늘 성에 대한 비뚤어진 관념을 지닌 선생들이 있었다. 정도가 얼마나 지나쳤는지는 둘째 치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은 늘 예술을 면죄부로, 핑계거리로 이용하려 들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있던 성범죄자는 자신의 개인적 공간으로 학생을 끌어들인 후 예술을 위해서는 성적인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면서 미성년자인 제자들에게 범죄를 저질렀다. 입에 올리기 싫을 만큼 더러운 인간이지만 이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인간의 논리 혹은 권위에 휩쓸려간 어린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애초에 권위도 없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는 권위 있는 사람처럼 굴었고 공공연하게 현장에서의 입지를 운운하면서 학생들을 교란시켰다. 그의 권위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존엄성을 이길 권위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단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 만난 선생은 늘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아마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말을 꺼내면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입에 올린 단어들을 생각해 보면 그는 분명히 여성을 예쁜 여성과 안 예쁜 여성의 이분법으로 구분을 하고 차별했다. 그런 발언들을 일삼으면서 그는 자신이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이고 교수이기 때문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 같이 이야기했다. 과연 그럴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나를 비롯하여 선생에게 태클을 거는 학생은 없었다.

내가 위에 언급한 두 선생은 모두 지금은 선생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다.

내가 경험한 일들 외에도 예술계와 문화계에는 많은 성범죄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미 사회적 매장을 당한 거나 다름없는 수많은 연극배우들, 연극계 인사들은 그저 그러한 성범죄자들의 대표격인 사람들일 뿐이다. 조금 덜 유명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는지 가늠이 안 된다. 요컨대 이것은 의식의 문제이고 우린 아직 의식화가 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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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 대한 고정관념

예술가를 두고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이미지는 바로 자유분방함이다. 실제로 어떻건 간에 미디어 매체에서 예술가들은 십중팔구 자유로운 영혼으로 등장한다. 도대체 예술이 뭐길래?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고도 예술은 할 수 있다. 등에 기타를 매고 다녀야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예술가야 말로 계속해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비로소 숙련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반복 행위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안에서 생각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워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예술은 소위 말하는 ‘노가다’나 다름없는 반복적 행동을 통해 숙련된다. 미술, 영화, 음악, 무용, 연극 모두 다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예술에 관해 전통적 사고방식을 지닌 많은 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특권이라도 얻은 마냥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는 한다. 어떻게 보면 미디어가 자신에게 준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이용해 먹으려는 심보다. 설사 이러한 사고방식을 지닌 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있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당할 경우 예술을 면죄부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예술가는 이래도 돼, 하는 거다. 작품에서나 하면 될 파격을 실생활에서 행하는 거다. 자신을 최대한 통제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덕인들의 노고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 멋대로 행동해놓고 예술가 입네, 하는 것. 이것만큼 꼴불견인 게 없다.

생각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블랙 유머의 대가,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 그는 자신의 삶에서는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시민사회의 일원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아이들의 아버지였고 의용 소방대원이었고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술과 담배를 매우 즐기는 것과, 밤에 전화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을 뿐 일탈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는 모범 시민적 생활 속에서도 뚜렷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의 모범이 된다.

예술인 중 한명인 나는 커트 보네거트적 삶을 지향한다. 우리가 예술인이기에 앞서 이 사회의 시민이자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은 특유의 자유분방함보다는 시민 사회의 일원이라는 더 중요한 기준을 스스로에게 들이대 보아야 할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미치광이 같은 삶이 아니라 훈련과 몰입에서 탄생함을, 나는 믿는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서울 시민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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