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체코 프라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 작은 도시 호테르보르시(Chotěboř)에 베네딕투스 공동체(Community Housing Benediktus)가 있다. 이곳은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사는 작은 NGO다. 10명 남짓의 공동체 사람들은 두 채의 건물과 넓은 마당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같이 논다.

매일 아침 8시에 전체회의가 열린다. 거창한 자리는 아니다. 어젯밤 창문을 열고 자는 바람에 감기기운이 있다거나, 저녁식사 후에 새로 산 보드게임을 하자는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최근 다툼이 있었던 이들에게는 서운했던 감정을 내보이고 털어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한 뒤, 공동체의 대장 마틴의 대표기도로 회의는 마무리된다.

베네딕투스 공동체 ⓒ고라니

내가 머물던 당시에는 워크샵 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집짓기가 한창이었다.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씩 볏짚 단을 쌓아 벽을 만들고, 전기톱으로 고르게 다듬고, 걸쭉한 진흙반죽을 겹겹이 바른다. 몸무게가 100kg을 훌쩍 넘는 거구의 토마스는 6~7세의 정신연령을 가진 청년인데 힘쓰는 일에 일당백이다. 그는 못질이 필요한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영화 <어벤저스>에서 토르가 들고 다니던 것과 비슷한 망치를 휘두르곤 했다. 그 어떤 말뚝이나 대못도 토마스의 망치질 두 번이면 정확한 위치에 깊숙이 박혔다.

건축 작업이 없을 때는 각종 워크샵이 진행된다. 작업장에서 에코백과 카펫을 만들거나 세라믹 그릇을 구워 방문자들에게 판매하고, 인터넷으로 주문이 들어온 건들은 포장해 택배로 부친다. 공동체는 지적장애인들에게 분업화된 단순작업만 일임하지 않는다. 대신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하도록 한다. 노동은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자존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든 노동과정에 자율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복지서비스의 일방적인 수혜자가 아닌 공동체의 주인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다.

공동체는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거주자들의 정신적 독립을 돕고자 지나친 배려를 삼가고 있었다. 첫 식사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토마스에게 수저와 포크를 챙겨주고 물을 따라주느라 부산을 떠는 내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Just have a dinner together.(그냥 같이 밥이나 드세요.)” 필요 이상의 도움은 상대방의 의존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곳의 거주자들은 두 손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어서 꼭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일상생활은 모두 스스로 꾸려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Sir(선생님)”과 같이 특정인에게만 붙는 호칭이 없고 모두가 서로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문화가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것 같았다.

공동체에서의 마지막 밤, 베네밴드의 공연이 개최됐다. 베네밴드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이 지역에서는 아이돌을 방불케 하는 인기를 자랑한다. 키보드와 기타, 각종 타악기로 자작곡을 연주하는 베네밴드는 지역축제에 단골로 참여한다. 또한 유럽 각지의 학교, 카페, 클럽을 전전하여 순회공연을 열기도 한다. 잠시 머물다 가는 몇 명의 봉사자들을 위한 작은 공연이었음에도 베네밴드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프로답게 누구 한 사람이 잠시 박자를 놓쳐도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광란의 밤이 끝나고 내한공연 계획은 없냐는 내 물음에 이들은 비행기 표 10장만 끊어 주면 언제든 방문하겠다고 대답했다.

마틴은 베네딕투스 공동체의 인원을 늘릴 계획은 없다고 단언한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적인 통제를 위한 관료제적 위계질서와 엄격한 규율이 자리 잡기 쉽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개개인의 자유가 존중받는 일상은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시작할 때는 경제적인 고달픔보다 주변의 배타적인 시선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지역주민들은 이곳을 약간 특별한 동네사람들이 사는 집 정도로 여기게 됐고, 그 덕에 거주자들은 집 주변을 편하게 산책 다닌다고 한다.

베네딕투스 공동체의 모토 중 하나는 “천사가 아닌 보다 인간이 되는 것”이다. 보통의 인간으로 사는 데도 수많은 조건이 필요한 요즘, “보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생각해 본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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