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오피니언타임스=허승화] 휴가철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이 되면 수많은 직장인들이 공항을 통해 출국을 한다. 돈 아끼기 좋아하는 우리 언니도 외국으로 가니 말 다했다. 저가항공이 무척 성장한 만큼 옆나라 일본이나 동남아 국가는 쉬운 휴가철 선택지가 되었다.

국내 저가 항공사의 항공기를 타고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여행지에 가면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 도시 중심에서 꼭 낯익은 얼굴들을 마주한다는 사실이다. 그 얼굴은 바로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다. 그 뿐 아니다. 저가항공사 취항지의 중심에는 늘 수많은 한국인들이 몰려있곤 한다. 이런 현상이 무엇을 뜻할까? 여행자들이 다들 검색(혹은 조사)을 해보고 어딘가에 제시된 ‘가야 할 곳’에 꼭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반대로 중심부를 지나쳐서 외곽으로 가면 한국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많이 벗어날 필요도 없다. 조금만 중심을 벗어나도 한국어는 들리지 않게 된다. 대표적인 ‘한국인’의 관광지 후쿠오카나 오사카에서조차 중심부를 벗어나면 한국인 관광객을 찾기가 어렵다.

ⓒ픽사베이

국내에서 출판된 후쿠오카나 오사카 여행 책자를 보면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2박 3일, 3박 4일 추천 코스 역시 대동소이하다. 어떤 사람이 그 코스를 따라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소개된 추천코스를 소화하면 조금 힘들더라도 별 미련 없는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책자들마다 이러한 추천 코스가 실리는 이유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는 일명 ‘가성비’를 워낙 좋아해서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현재 젊은 여행자들이 여행 책자와 블로그 리뷰를 통해 성실하고 똑똑한 여행, 실패하지 않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효율 속에서 은근히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여행의 여유와 낭만일지도 모른다.

성실한 관광객들

내가 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느꼈던 신비로운 점은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여행마저도 성실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청소해주는 분들이 깨울 때까지 침대에 등을 붙이고 있는 건 늘 나뿐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씻고 여행 책자를 손에 든 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결에도 그들의 분주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나라를 가든 마찬가지로 목격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한국인은 성실의 아이콘이었다. 한국인들은 늘 숙소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서 가장 늦게 들어오는 무리였다.

국내여행에서는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부산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때였다. 하루에 만 원짜리 8인 도미토리였는데 나를 제외하고 묵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나는 매일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 9시쯤 일어나서 숙소를 나와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그 방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서 가장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나의 임시 룸메이트들은 도대체 숙소에서 뭘 하나 싶을 만큼 줄곧 침대에 머물러 있었다. 중심부를 벗어난 곳에 위치한 숙소라서 주변에는 딱히 볼 것도 없는 곳인데도 그랬다. 그들은 뭘하든 늘 여유가 넘쳐 보였다.

외국에서 본 한국인의 모습과 한국에서 본 외국인의 모습을 비교해보니 더욱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확실히 성실했다. 실생활에서도 휴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여유가 필요해

어쩌면 이러한 여행 성향의 차이는 삶을 둘러싼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지도 모른다. 주말과 짧은 월차를 이용한 3박 4일 짜리 여행에서 무슨 여유를 찾을 수 있겠는가. 짧은 휴가를 내면서도 온갖 눈치를 보는 젊은 직장인들도 싼 비행기 티켓을 발견하면 일단 지르고 마는 심리는 똑같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절대적 시간의 양이 너무 적기에 그 시간 동안 어떤 실패도 용납할 수가 없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가성비 갑’ 리뷰를 찾아내는 우리의 애처로운 손놀림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꼭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빨리 빨리’와 효율 그리고 가성비를 따지면서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자꾸 분주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곳이 비록 휴양지더라도 평소 삶의 태도는 어디가지 않는다. 여유, 그것이 부족하다.

이렇듯 성실한 나라에 적응해 사는 우리가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리적 시간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잃어버린 휴가를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끝없는 야근과 성공을 포기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긴 휴가 속에서 어떠한 ‘여유’도 우리에게는 영원히 유실물일 테니 말이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서울 시민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