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던 중 있었던 일입니다. 3시간 넘게 연이어 강의가 이어지다 보니 학생들이 많이들 졸고 있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 비파를 켜며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릅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 갈 것입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은 너무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저는 문득 불합리한 사회 속에서도 희망의 시를 쓰는 제가 생각났습니다. 마침, 이 길이 제 길이 맞는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에 빠졌던 시기였습니다. 이상하게도 비파를 켜는 소녀가 꼭 저 같아서 마음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교수님께서 마치 제게 질문하는 것 같아서 발표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저는 손을 들고 나지막하게 답했습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요.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픽사베이

그 말은 제가 사회 속에서 무르익어가던 ‘나’라는 자신에 대해서 던진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요즘, 현실적이지만 낙천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외치며 무르익어갈 날들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수레바퀴처럼 뱅뱅 제자리를 맴돌며, 살아가면서도 죽어가는 요즘 사람들보다는, 죽어가면서도 살아가는 그 소녀가 훨씬 행복하고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나 가슴 속 한켠에는 물이 차오르는 작은 섬 위에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그 소녀를 살리느냐 마냐는 각자 생각하는 희망의 가치에 달려있겠지요.

저는 그래서 오늘도 비파를 켜며 웃음을 불러들이는 중입니다.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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