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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자연사[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김봉성 | 승인 2018.09.03 11:34

[논객닷컴=김봉성] 명절의 자연사(自然史)는 농업에서 비롯되었다. 설부터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해 추석에 수확을 완료했다. 음력은 필연이었다. 현대에도 차표, 교통체증, 선물, 화목 등으로 자연사를 유지했다. 그러나 차표 예약의 난도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으며 교통체증도 예전만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선물은 돈으로 해결했고, 화목은 글쎄다. 명절은 산업 시대와 정보화 시대를 압축적으로 건너온 현대의 음력 같다. 일상과 겹쳐지지 못하고 자연사 중이다.

추석 명절 서울역 풍경. ⓒflickr

명절이 되면 의무감으로 고향에 가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가끔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다. 처음의 명절 그 느낌, 그 설렘은 이제 없다.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제 사실이다.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개사하면 이 정도일까. 이 노래가 유행할 때만 해도 명절은 교과서나 드라마 속 명절을 닮았는데.

명절 스트레스는 더 이상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남성들이 나누어 가진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의 총량이 늘어났다. 2017년 9월에 발표된 직장인, 취업준비생 289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성별, 취업 유무와 무관하게 70% 이상이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2018년 2월 발표된 성인 311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설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50.6%, 기대하는 사람은 15.6%로 나타났다. ‘명절 스트레스’를 검색해 보면 유사한 결과가 범람했다. 관습과 인습의 경계에서 뜬 보름달의 표정이 시무룩해진 지 오래다. 시대가 변했다.

첫째, 여성의 지위가 변했다. 가부장은 더 유효하지 않았다. 농경 시대의 생산성은 근력과 비례했다. 산업사회도 그 비중은 줄어들어도 근력은 생산의 중심 부근에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부장 문화는 경제적 설득력이 강했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 근력의 생산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생산성을 갖춘 여성이 가부장 문화에 동의할 이유는 없다. 사회가 민주화되어 감에 따라 성 평등의식도 높아졌다. 남성의 조상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명절 문화는 시대에 맞지 않는 코르셋이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증가했다.

둘째, 가족도 변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친인척 간 가까운 지역에 살며 비슷한 일을 했다.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은 만큼 혈연을 중심으로 한 두터운 신뢰를 구축했다. 개인의 일상 속에 친인척이 끈끈하게 녹아 있었다. 이때의 명절은 일상을 치장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오면서 직업이 분화되었다. 친인척은 멀어졌다. 직계 형제자매도 떨어져 지냈다. 공유할 옛날은 있어도 각자도생하는 동안 공유할 현재가 없어졌다. 그들의 자식 세대는 공유할 옛날조차 없었다. 친해지기 힘든 환경인데, 명절은 갓끈을 고쳐 맬 생각이 없다. 친분을 위장한 감정노동에 진이 빠질밖에. 스냅백에 익숙한 자식 세대는 피시방이 없는 무료한 지옥을 맛본다. 그나마 이들은 감정노동의 대가로 용돈이라도 받지만, 중년들은 데면데면하게 구는 이들에게 돈까지 뜯긴다. 이도 저도 아닌 대학생, 취준생들은 명절이면 차라리 아르바이트라도 하기를 바랐다. 명절이 끝나면 극기(克己) 담이 커뮤니티에 유통되었다.

셋째, 고향이 사라졌다.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태어나 한곳에 머무는 농경 시대와 달리 현대 사회는 이동이 잦았다. 고향이랍시고 모이는 곳은 부모님 집이었다. 이 경우 집 밖을 나서도 정서를 공유할 사람이 없다. 고향 친구들은 각자의 부모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부모님 집 밖은 낯선 풍경, 낯선 사람뿐이어서 집 안에 있는 것이 무난했다. TV만 붙들고 있거나 어색함을 무마하려고 고스톱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넷째, 유희 수준도 변했다. 과거에는 명절이 큰 유희였다. 그러나 요즘은 재밌는 것이 넘쳐난다. 지역 축제가 빈번하고, 내 가수의 공연도 열리고, 드라마 다음 회차가 궁금증으로 간을 간질거리고, 게임 경험치 두 배 이벤트도 피를 끓게 만든다. 옷은 이곳저곳에서 연중 에누리고 세일이고, 편의점에만 가도 차례 음식보다 맛있고 실용적인 음식들이 넘쳐난다. 돈만 들고 나가면 이벤트가 호객을 하는 세상이다. 아니, 방구석에서 종일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어도 재밌다. 명절이 주는 즐거움은 대체 뭔가?

현대인은 항상 바쁘다. ⓒ픽사베이

이렇게, 시대는 변했다. 추수를 기다리거나 추수가 끝나 여유로운 추석, 농한기에 소일거리를 찾아서 빈둥대는 설의 시절은 갔다. 지금은 늘 바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충전할 휴식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금요일 저녁처럼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넥타이나 하이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과 일요일의 예감이 주는 여유다. 그래서 명절의 솔직한 이름은 스트레스다.

명절에도 입지 않는 한복, 음악 파일로 소유하거나 스트리밍하지 않는 아리랑은 관광지나 민속 박물관으로 갔다. 한두 세대가 더 지나면 명절의 차례가 되지 않을까? 장송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그 장례식의 표정이 밝다면, 씁쓸할 듯하다. 물론, 많은 사람이 TV 속 화기애애한 명절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럽다. 여성의 희생이 강제되지 않고, 친인척 간 가깝다면 자랑할 만한 화목이다. 그러나 점점 화기 애매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화목한 명절을 흉내 내는 동안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화목은 인천국제공항에 바글바글했다.

 김봉성

대충 살지만 글은 성실히 쓰겠습니다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다.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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