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정의(正義)를 ‘거래’하는 세태를 목격한다. 정의를 주고받는 것, 사고파는 것, 오가는 게 있는 것으로 여긴다. 정의를 거래하는 사회는 점점 더 부패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정의를 거래해서는 안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라고 얘기한다. 요약하자면 정의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바르게 나누고 누리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이자 최소한이다. 인권은 누구나 똑같이 누려야 하고 거래의 대상이 되거나 양도될 수 없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은 ‘모든 인류 구성원의 천부(天賦)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라는 말로 시작한다. 인간 존엄의 바탕이 되는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지난해 9월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유튜브 미디어몽구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일 서울 강서구 공립특수학교(서진학교) 건립 합의를 이끌어냈다. 장애 학생 부모들이 장애인 시설의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민들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호소한지 1년 만이다. 한데 합의 조건을 놓고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진학교 옆에 주민복합문화시설을 함께 짓기로 한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강서 지역에서 학교를 통폐합할 경우 그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우선 건립하기로 한 것은 정의와 인권에 반한다. 서진학교와 맞교환한 국립한방병원 건립은 이 지역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 대표의 총선 공약이었다.

우리 헌법 제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31조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다. 국립한방병원 건립 조건은 인권을 놓고 거래한 것이다. 합의 조건을 전해들은 장애 학생 학부모들은 앞으로 특수학교 설립에 나쁜 선례가 될 것을 우려하며 합의 철회를 촉구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딸이 있는 같은 당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나쁜 합의’, ‘있을 수 없는 합의’”라며 “특수학교는 기존의 계획대로 건립하면 될 뿐,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거래’는 어떤가. 상고법원 설립을 관철하기 위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재판을 했다는 의혹은 양파 껍질 벗겨지듯 쌓이고 있다. 얼만 전엔 일제 강제 징용과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을 거래 대상으로 삼은 뚜렷한 정황이 드러났다. 정부가 대법원에 낸 전교조 소송 서류는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감수·대필한 의혹까지 있다고 한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거꾸로 정의와 천부의 불가침의 권리인 인권을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니 기가 막힌다.

정의와 인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아래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대가는 엄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의를 거래하고 불의에는 눈을 감고 불이익에만 분노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공동대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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