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우리 문화재 이해하기] 도가 지나친 민족주의, 소위 ‘국뽕’의 경계는 넘지 말자!

[오피니언타임스=김희태] 우리 헌법의 제3조 1항을 보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은 헌법이 규정한 영토 조항과는 맞지가 않은데,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북쪽은 북한이 통치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북한에 대해 반국가 단체이면서 동시에 통일을 추구해야 할 다소 이중적인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러한 모순적인 성격은 우리 내부 보혁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혀왔다.

현재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북한이 통치하는 지역은 수복하지 못한 영토 혹은 실질적 영향력이 미치지 않다고 볼 뿐, 조선시대 이후의 영토적 관념이 반영된 모습이 헌법의 영토조항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인식하고 있는 영토적 관념과 현재의 모습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반도 밖 영토의 존재와 북한이 백두산을 팔아먹은 것으로 전해지는 <조중변계조약>을 들 수 있다. 또한 중국과의 이어도 갈등에서도 볼 수 있듯 향후 우리나라와 중국 간 불씨가 될 만한 문제라는 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 한반도 밖에도 영토가 존재한다?

대부분 한반도의 최북단을 떠올리면 ‘압록강’과 ‘두만강’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 두 강을 경계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기에 원론적으로 보자면 우리 헌법의 영토 조항인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한다는 말은 일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퇴적층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영토가 중국 쪽에 붙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비단섬’과 ‘황금평’의 사례다.

중국 장백현에서 바라본 해산시, 양국을 가로지르는 압록강의 모습이다. ⓒ김희태

중국과 북한이 맺은 ‘조중변계조약(1962)’에 따라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강에 있는 ‘하중도’ 역시 그 소유가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이때 북한의 소유였던 곳이 바로 ‘비단섬’과 ‘황금평’으로, 그 위치는 중국 단둥시의 아래, 서해에서 압록강으로 들어서는 입구다. 그런데 조약을 맺을 당시만 해도 섬이었던 이곳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퇴적층이 쌓이다 중국 쪽으로 붙어버리게 된다. 그럼에도 조약에 따라 ‘비단섬’과 ‘황금평’은 북한의 땅으로 인정되고 있어, 향후 통일 과정에서 ‘비단섬’과 ‘황금평’ 등 중국 쪽에 붙은 영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해동지도에 등장하는 녹둔도의 모습, 두만강 하구에 ‘녹둔(鹿屯)’으로 표기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영토였지만 러시아의 영토로 변해버린 사례가 있는데, 바로 두만강 하구에 위치한 ‘녹둔도’다. 흔히 녹둔도라고 하면 이순신과 녹둔도 전투를 떠올릴 만큼 우리에게는 익숙한 곳으로, 1586년 조산보 만호로 임명된 이순신은 이듬해 녹도 둔전사의를 겸직하기도 했다. 또한 녹둔도는 조선 때 제작된 지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해동지도>를 비롯해 <대동여지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녹둔도’로 퇴적층이 쌓이면서 연해주 쪽으로 붙어버렸다는 점에서 흡사 ‘비단섬’이나 ‘황금평’과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청나라와 러시아 간 베이징 조약(1860)에 의해 연해주가 러시아 땅으로 귀속되고, 이때 ‘녹둔도’ 역시 러시아로 넘어가버렸다. 당사자가 아닌 타국이 마음대로 우리 영토를 줘버린 사례로, 우리로서는 억울할만한 내용이다.

■ 북한은 백두산을 팔아먹었나? 백두산정계비가 들려주는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 중 백두산이 있다. 민족의 영산으로 알려진 백두산은 그 위용만으로도 웅장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강의 중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백두산과 관련해 “한국전쟁의 참전 대가로 북한이 중국에 팔아먹었다"라는 인식을 어렵지 않게 들게 된다. 실제로 백두산은 천지를 기점으로 중국과 북한이 절반씩 소유한 형태로, 어느 한 나라가 온전히 소유한 형태는 아니다. 그렇기에 백두산을 방문했다면 십중팔구 중국 쪽에서 올라간 것으로, 지금도 백두산 천지에 오르면 중국과 북한의 국경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백두산 천지에 세워진 경고문, 천지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맞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희태

그런데 지난 2007년 장춘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시상식에서 우리 선수들이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이른바 백두산 세리머니를 선보여 외교 문제로 비화된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통쾌하게 느낀 이 장면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백두산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백두산이 왜 우리 땅인가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백두산이 우리 땅인 것일까? 그렇다면 북한이 중국에 백두산을 팔아먹었다는 말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우선 백두산에 대해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간도’와 ‘백두산정계비’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는데, 지금의 백두산 지역은 한민족의 발상지이자 동시에 만주족들에게도 신성시되었다. 조선과 명나라를 제압한 청나라는 이후 자신들의 발상지인 지금의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을 봉금지대로 설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로 조선인들이 봉금지대로 넘어가는 일들이 발생하자, 결국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국경 확정과 관련한 회담이 열리게 된다.

백두산정계비의 탑본 ⓒ국립중앙박물관

숙종 때인 1712년 당시 백두산에서는 청나라의 목극등과 조선 측 대표인 접반사 박권이 참여한 회담이 열리고, 문제의 비석이 세워지게 된다. 이 비석이 바로 ‘백두산정계비’로, 당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에 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비석이다. 백두산정계비는 크게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이 핵심으로, 여기서 서쪽의 압록강은 크게 이견이 없지만, 토문강의 존재에 대해 이후 숱한 논란이 야기된다. 한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백두산정계비’에 따르면 애초에 백두산 천지는 우리 영토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 지점을 보면 이해가 되는데, 백두산의 동남쪽 지금의 북한 측 송화강의 발원지인 해발 2200m 지점에 세워져 있었다. 따라서 지금처럼 백두산 천지의 절반을 가져간 북한은 백두산을 팔아먹은 게 아니라 오히려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정계비를 보면 천지는 애초에 조선 땅이 아니었다. 따라서 천지의 절반을 차지한 건 북한의 선방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당시 조선 측 대표인 박권을 제외한 채 백두산으로 올라간 청나라의 목극등은 자신이 생각한 토문강의 발원지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목극등은 이 발원지를 토문강, 즉 두만강의 시작으로 봤는데, 실제로는 송화강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 청나라의 실수로, 이러한 사실은 발원지로부터 강의 지류까지 ‘석퇴’와 ‘목책’을 쌓아 경계를 구분했는데,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당시 찍은 사진 속에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최초에는 조선 역시 압록강과 두만강이 국경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후 정계비 속 토문강을 송화강으로 주장, 훗날 ‘을유감계회담(1885)’과 ‘정해감계회담(1887)’을 통해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조선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다.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 지금은 중국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희태

하지만 힘의 역부족으로 이중하는 두만강의 지류 중 최상류인 ‘홍토수(紅土水)’ 안으로 수정하게 되고, 청나라는 이보다 낮은 ‘홍단수(紅端水)’ 안을 관철하도록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토문감계사(土門勘界使) 이중하(1846~1917)는 “내 머리를 자를지언정, 나라의 영토는 한 치도 줄일 수 없다"라며 반발, 결국 감계회담은 결렬되었다. 이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조선)을 대신해 일제는 청나라와 이른바 ‘간도협약(1909)’을 맺어 남만주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을 챙기고, 문제가 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게 된다. 이 협약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은 ‘석을수(石乙水)’로 확정, 그만큼 백두산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도문 다리,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나뉜다. ⓒ김희태

이후 일제가 패망하면서, 자연스럽게 <간도협약>은 무효화되고, 북한과 중국이 새로운 국경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조중변계조약>이다. <조중변계조약>을 통해 두만강의 최상류인 ‘홍토수’를 국경으로 삼고, 여기에 백두산 천지의 절반은 북한의 땅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이중하가 수정 제안했던 홍토수 안을 실현시킨 것이고, 동시에 ‘백두산정계비’에는 없는 백두산 천지의 절반을 가져온 것이니, <조중변계조약>은 북한에 유리하게 체결된 조약이다. 오히려 최근 중국의 영토팽창을 보면, 이렇게 협상을 조성한 북한이 대단하게 보일 정도다.

문제는 훗날 통일 한국이 되었을 때 <조중변계조약>을 승계할 것인가의 여부인데, 일각에서 ‘간도’를 되찾아야 한다며 이를 거부, 새로운 국경 조약을 맺을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협상을 통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낼 수 있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오히려 지금 있는 영토조차 지키지 못할까 심히 우려스럽다. 또한 지나친 민족주의는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지난 2012년 심상정 국회의원이 발언했던 “이어도는 섬이 아닌 암초다”라는 발언에 매국노 혹은 이완용, 영토를 팔아먹었다는 등의 비난이 들끓었다. 하지만 실제 이어도는 섬이 아닌 수중 암초로, 지금은 해양과학기지가 건설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영토가 아닌 영해 기점과 관련한 협상이라는 점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어도는 우리 영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될 문제이지, 여기에 영토적 관념을 덧붙이는 것은 이어도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의 풍경, 이어도를 섬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어도는 수중 암초로, 영토로 볼 수는 없다. ⓒ김경화

또한 평소에는 이 문제에 관심도 없는 이들이 민족 혹은 애국이라는 단어에 편승해 비난하는 것은 문제로, 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북한이 백두산을 팔아먹었다"라는 낭설을 퍼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위 ‘국뽕(국가+히로뽕의 합성어)’에 취해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지난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 인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에 대한 이야기 한 바 있는데, 우선 민감한 부분인 영토와 역사 등과 관련한 부분은 우리의 핵심 이익으로 지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말뿐인 서생의 문제 인식이 아닌 상인의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 문화연구소장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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