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빈의 위로의 맛]

어쩔 수 없이 함께 먹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함께 먹는 식사보다는 혼밥이 편하다. 우선 메뉴를 마음대로 정할 자유가 있다. 백주대낮에 돼지갈비를 구울 수도, 감자탕 가게 문을 반쯤 열었다가도 대뜸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도 상관없다. 하지만 함께 먹는 일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무리 중에 암묵적인 메뉴 결정권자가 있는 경우, 특히 그 결정권자가 불필요한 관대함을 발휘해 “자네들 먹고 싶은 걸로 먹지”라며 메뉴를 고르라고 하는 경우, 나 같은 인간은 꽤 큰 피로감을 느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의 절반 정도는 ‘함께 먹는 식사’였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메뉴를, 함께.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가까이를 급식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대학 신입생 땐 아웃사이더 되는 게 싫어서 삼삼오오 모여 대학가 맛집 탐방을 했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다들 저렴한 ‘학식’으로 모여들긴 했지만. 그러다 군대에서 절정을 찍었다. 그곳은 식사 시간조차도 사회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정해진 것들’이 많았다. 훈련소에선 식사 전에 감사의 구호를 외치고, 각을 맞춰 밥을 먹어야 했다. 이등병은 젓가락을 쓰지 못한다거나, 후임은 식사가 끝나도 먼저 일어나선 안 되는 불문율도 있었다. 식단이 별로인 날엔 선임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껏 급양병에게 달려가 고추장, 참기름을 얻어내야 하는 수고로움은 또 어떻고.

ⓒ플리커

추억 속 급식의 맛

가끔 SNS에서 사진만으로도 군침 도는 급식 식단을 자랑하는 학교들이 소개되곤 한다. 학교마다의 예산, 담당 영양사의 재량과 능력 등등 많은 조건들이 서로 다르겠지만 고등어구이 두 토막으로 15명의 아이들을 먹였다는 경기도 오산 어린이집의 부실 식단 뉴스보다는 자주 소개되어야 할 소식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 기억 속 급식의 맛을 되짚어보면 어쩐지 음식은 없고 짜고 달달한 감각만 남아있는 것 같다. 단백질과 지방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탄수화물은 가득한 식단. 건더기보다는 국물의 기억만 흥건하고, 풍선을 닮은 포만감은 늘 그 속에 허기를 품고 있었다. 그래도 그 시절의 맛을 조금이나마 그리워할 수 있는 건, 함께 웃고 떠들고 고생했던 사람들의 기억 덕분일 것이다. 결코 급식의 맛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결코, 절대.

생각해보면 급식 같은 ‘함께 먹는 식사’는 애초에 훌륭한 식사가 될 수가 없다. 모두가 만족하는 음식이 아니라 불만족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식단 전략을 짜야할 테니까. 그러다보니 독특한 맛, 아주 자극적인 맛, 특별한 맛을 배제하게 된다.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릴 만한 별미보다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소시지, 구운 고기 정도로 타협한다. 물론 재료비의 압박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량 배식은 늘 메인 메뉴에만 철저하다.

그래서 급식을 처음 먹을 땐, ‘그럭저럭 먹을 만하네’ 정도의 호의를 베풀게 된다. 하지만 하루 이틀, 몇 주 동안을 먹다보면 금세 물린다. 뻔한 메뉴에 물리고, 달고 짠 맛에 물리고, 냄새만으로도 메뉴를 줄줄이 욀 정도가 되면 먹기도 전에 물린다. 그러면 저렴한 가격을 포기하고서라도 급식소나 직원 식당을 벗어나 근처 식당으로 향하게 된다. 아무리 큰 직원 식당을 가진 회사라도, 회사 근처 식당이 붐비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랜만의 함께 먹는 식사

프리랜서로 글을 쓰니, 급식이나 직원 식당의 맛을 강제로 느낄 일이 없었다. 나는 내 입맛과 그때마다의 기분에 따라 내가 원하는 메뉴를 마음껏 ‘혼밥’했다. 그런데 4개월 전부터 부업으로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주 5일 이상을 직원 식당에서 ‘함께 식사’해오고 있다.

백화점의 매장들을 대상으로 배송하는 덕에, 백화점 직원들이 이용하는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한 끼에 3800원. 웬만한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한 값이다. 게다가 메뉴도 A(한식), B(양식), C(분식) 3가지나 있다. 앵겔 지수가 굉장히 높은 내게 직원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건 굉장한 메리트였다. 그리고 맛도 괜찮았다. 아, 물론 2개월쯤까지는 그랬다는 뜻이다. 이제는 점심시간이 되면 먼저 식사를 한 백화점 직원들의 옷에 묻은 냄새만 맡아도 물릴 지경이 되어버렸다.

포틀럭 파티라면 괜찮아

그런 직원 식당에서, 그러나 자기만의 미각 영역을 구획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누님 부대’다. 누나가 아니라 누님일 수밖에 없는 건, 그분들이 내 어머니보다도 연장자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아니라 연세라고 해야 되는 상황이긴 한데, 아무튼 백화점에서 그분들을 부를 땐 ‘누님’이라고 해야 한다. 당연히 백화점 규칙엔 없는 불문율이다.

누님들은 뻔하디 뻔한 직원 식당의 메뉴를 각자 받아와서 테이블을 넉넉히 차지한다. 그리고는 각자 챙겨온 자기만의 음식을 테이블 가운데에 보란 듯이 올려두기 시작한다. 각종 젓갈이나 장아찌 종류는 항상 하나쯤 있고, 커다란 보온통에서 국이나 찌개가 콸콸 쏟아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한 테이블에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미역국, 재첩국까지 차려진 걸 본 적도 있다. 그날의 직원 식당 메뉴는 김치찌개였으니, 거의 ‘찌개 어벤져스’가 모인 셈이었다. 과메기, 장어구이, 꼬막 탕수육 같은 별미도 등장하고, 한입 크기로 손질해온 제철 과일과 직접 쌀을 팔아 찐 떡은 디저트 단골 메뉴다. 그리고 그쯤 되면 식판에 받아온 직원 식당 메뉴는 그저 수저와 쌀밥, 김치 정도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보조 역할로 밀려나있다.

직원 식당에서 벌어지는 누님들의 포틀럭 파티. 식당에 갈 때마다 그 애살맞은 정성과 시끌벅적한 수다도 보기 좋았지만, 무엇보다 매번 달라지는 메뉴들이 부러웠다. 그 메뉴들은 불만족을 최소화하기 위한 맛이 아니라, 온전히 만족스러운 맛일 테니까. 국이나 찌개에는 건더기가 가득하고, 단맛과 짠맛 말고도 다양한 맛들이 버무려져 있을 테니까. 각자의 메뉴에는 각자의 사연과 애정이 담겨 있고, 그래서 결코 쉽게 물리지 않을 테니까.

그래, 사실 함께 먹는다는 건 바로 저런 거지. 그저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고 함께 먹는 건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누님들처럼 찬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와 포틀럭 파티를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게으른 건지, 아직 직원 식당 밥이 먹을 만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직 덜 외로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피니언타임스=김경빈] 

 김경빈

 글로 밥 벌어먹는 서른. 라디오 작가 겸 칼럼니스트, 시집 <다시, 다 詩>의 저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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