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하굣길 학교 캠퍼스에선 조그만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개강 겸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되었음을 자축하는 행사였다.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된 다른 학교들도 플래카드를 달거나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등 기쁜 소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개선대학에 들지 못해 정원 감축 및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에선 총장이나 보직 교수가 줄줄이 사퇴하고 있다. 승리한 자들은 축배를 들고, 패배한 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쟁이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에도 기꺼이 즐거워할 수 없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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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는 줄어든다. 자연스레 대학 입학 정원이 지원자 수보다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학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할만한 주장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대학 구조개혁 평가’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방대에 불리한 평가 방식이며, 개별 대학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등 대학 및 교육단체들의 반대가 있었다. 이에 이번 정권에선 ‘대학 기본역량 진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평가지표나 배점도 일부 수정했다. 하지만 대학 정원을 줄이기 위한 교육부 주도의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변함없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대학끼리의 경쟁은 경영보다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역량평가에서 학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에 1단계 진단지표 75점 중 14점이라는 높은 비중을 두었다. 대학 구조개혁 평가가 이루어졌단 2015년엔 13점이었으니 당시보다 배점이 오히려 1점이 늘었다. 그렇다보니 학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이 낮은 철학, 문예창작, 예술, 미술 등의 과들이 폐과 또는 통폐합의 대상이 되었다. 해당 학과의 학문적 필요성이나 재학 중인 학생들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학생들의 반발에도 통폐합은 진행되었다. 교육부의 지원금이 대학 운영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원금 앞에서 구성원들 간의 소통이나 참여는 보장되지 못했다.

이번 기본역량 진단 평가는 대학의 부정부패에 눈 감아야 한다는 나쁜 선례도 만들었다. 평택대학교는 1차 예비 자율개선 대학이었으나 부정·비리에 따른 감점 대상이 되어 최종적으로는 역량강화대학이 되었다. 이로 인해 2021년까지 10%의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 친인척 인사 개입 및 회계 부정의 비리 때문이었다. 대학운영 정상화를 위해 교수진과 학생들은 총장 퇴진 촉구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총장 및 친인척의 비리로 인한 피해는 학교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그리고 평가지표는 이러한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등록금과 교육부 지원금이 대학 운영에 큰 비율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지원금 제한과 인원 감축은 사실상 대학의 운명을 교육부가 좌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학 구조개혁 평가로 시작해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로 이어지는 정책은 사실상 거부가 불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소통은 없다시피 했다. 학생들의 반대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학생들의 연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지도 못했다. 학교가 낮은 점수를 받게 되면 정부 지원금 제한 및 정원 감축, 더 나아가서는 폐교 절차를 밟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배움은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학내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경험, 자신이 믿고 선택했던 학과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경험 또한 크나큰 배움이다. 대학 구조개혁 평가가 남긴 교훈은 살아남기 위해선 침묵해야 하며, 변화보다는 탈출이 빠르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의 평가와 운영은 교육의 질보다 돈에 좌우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래서 학생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대학 구조개혁 평가는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논리를 대학 내부까지 퍼트렸다. 교육부의 목표대로 인원감축과 구조조정에 성공할지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은 더 이상 대학 내에서 내일의 희망을 찾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대학은 자멸중이다. 구성원들마저 외면한 대학에 장밋빛 미래는 없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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