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8]

[오피니언타임스=최하늘] 나의 올해 추석 명절은 유독 여유롭다. 평안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내가 영화보기 좋아하는 걸 잘 아는 아들은 하루에 한편씩 영화표를 예매해 카톡에 올려준다. 매일 저녁때면 아내와 함께 코엑스영화관을 찾아 요새 잘 나가고 있는 안시성, 협상, 명당 등을 감상했다. 낮에는 한 시간 반쯤 시간을 내어 우리 집에 맞닿아 있는 대모산 둘레길을 반려견 하늘이와 함께 느긋하게 걷는다.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대모산 산책로에는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진 밤송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밤톨을 하나 집어 들고 까먹으며 걷는 기분이 더 없이 상쾌하다.

가족들과 함께 신내동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뵙고 오는 차 안에서 잠시 상념에 빠진다. 되돌아보니 지난 10여 년 동안에는 추석명절을 이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이 분주하거나 근심거리가 있었다. 곡절이 많은 세월이었다. 하필이면 추석명절을 앞두고 오래 동안 다니던 직장을 나와 상실감에 빠져 있었던 게 제일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 동안은 추석명절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아내와의 말다툼으로 인해 연휴 기분을 망치는 일이 몇 년간 되풀이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런 것들로 내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참 좋은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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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가 10점 만점에 9.5라고?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이제는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계절의 변화, 짧은 가족 나들이 같은 소소한 것들이 새삼 소중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그러한 것들이 나의 행복지수를 높이 끌어 올린다. 나이가 들어가고 인생의 시즌이 바뀌어 가면서 나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들이다. 이런 것들은 내 내면의 변화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이제는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질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붙잡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 버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 느릿느릿 걸어도 답답하지 않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더 없이 아름답다. 세월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요 축복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매일 조금씩 더 행복해지고 있음을 느끼며 산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월요일 오전이면 전 임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미팅시간을 갖는다. 회의 방식이나 분위기가 예전 내가 일했던 곳들과는 사뭇 다르다.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 사람씩 순서대로 자신에 대해 얘기한다. 먼저 간단히 신상발언을 한 뒤 업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다. 한 사람당 대략 3~5분 정도가 할애된다. 사람 수가 모두 열다섯 명 정도여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여기에다 20~30 젊은이들이 뜻을 모아 만든 소셜 벤처라는 공동체의 특성이 더해져 이들만의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야기 소재에는 제한이 없다. 주말에 본 영화 평,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 얘기, 결혼에 대한 현실적 걱정, 건강 문제 등 그들의 일상과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 때 자신의 현재 컨디션을 점수로 매겨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특이하다. 최근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일들 가운데 더 낮은 점수를 면하게 하는 좋은 일과 더 나은 점수를 매기는데 발목을 잡는 부정적 요소를 여러 사람들과 나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처한 상황이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나는 현재의 내 상태를 10점 만점에 9.5점으로 얘기했다. 이것은 내가 느끼고 있는 행복도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조그만 탄성이 새 나온다. 대부분 6~7점 정도를 매기고 있는데 비해 매우 높은 점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 점수가 9점 보다 높게 형성된 이유에 대해 “전날이 아내의 생일이어서 두 아들과 함께 외식을 하고 영화 맘마미아2를 보았는데, 아내도 나도 너무 행복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시절 많이 들었던 스웨덴 그룹 아바의 익숙한 멜로디와 분위기로 인해 2시간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고 내 기분을 전했다. 10점이 안된 이유는 만점을 애기하는 것이 교만인 것 같아서라고 했다. 자신에게 매긴 이 점수는 결코 치기나 허풍이 아니었다. 내가 이처럼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내 마음이 조그만 일들에서도 큰 행복을 느끼도록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하프타임에 들어와 일 년 반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내면에 참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하프타임이 내게 준 선물

동서고금의 현인들이 많은 말로써 행복을 정의했다. 그리고 저마다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비법들을 제시한다. 그 중 결핍이 채워졌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얘기가 상당한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갖고 싶은 옷이나 자동차를 샀을 때, 들어가고 싶은 직장에 들어갔을 때, 이상형 연인을 만났을 때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행복감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리고는 다시 또 다른 결핍을 느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 생각해 본다. 내 삶에 결핍을 채우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서 비롯된 것은 분명 아니다.

내가 느끼는 행복감은 무엇이고,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내 행복의 중심에 ‘마음의 평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내 마음의 평화는 하나님과 평화롭고, 나 자신과 평화롭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로운데서 오고 있다. 이것은 다툼과 갈등이 사라진 상태라고 바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프타임이 내게 준 선물들이다. 지난 일 년 사이에 내 삶의 세 축이라 할 수 있었던 가정과 일, 그리고 신앙의 여정이 동시에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면서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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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운다는 것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맞은 하프타임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들과 다시 익숙해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밀려오는 상실감과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그것은 놓으면 죽을 것 같아 평생 꼭 움켜쥐고 살아온 두 손을 펴는 일과 같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숨겨져 있는 보물이 있었다. 쉼과 평화가 그것이다. 그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먼저 두 손을 비워야 했다.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되묻기도 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웬만큼 노력하거나 마음에 결단하는 것으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 생각과 마음을 주도하는 자아가 죽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내 자아가 소유에 대해 죽고, 욕망에 대해 죽고, 평판에 대해 죽어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를 죽여야 한다’는 역설이다. 이것은 평생 나를 움직여 온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얼마나 내려놓았나 되짚어 본다. 욕망에 대해서는 조금 내려놓은 것 같다. 평판에 대해서도 그렇다. 소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매여 있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내 마음을 고쳐 나가기 위한 작업은 평생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만큼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할 터인데도 이런 것들이 나에게 가져다 준 선물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마음의 쉼과 평화, 그리고 자유를 주고 있다.

욕망을 뽑아내는 만큼 커지는 행복

40년도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하고, 그것이 위대한 진리임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 하나 있다.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은 철학시간에 배운 행복 공식이 그것이다. ‘행복 = 성취/욕망’. 어린 나이였음에도 상당한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머리에 머물고 있던 이 진리가 내 마음까지 내려오는 데는 4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행복을 키우려면 성취를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면 된다. 이 둘이 동시에 진행돼 욕망을 줄이고 성취는 늘린다면 행복은 극대화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성취가 커지면 더 큰 성취를 꿈꾼다. 그러니 성취가 커져도 행복하지가 않다. 잠시 성취감을 느낄 뿐, 끝없는 결핍에 시달리며 산다.

행복하려면 욕망을 줄이는 게 현실적 대안이 된다. 신기한 일이다. 정말 그랬다. 자의건 타의건, 욕망을 줄이는 것이야 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욕심을 하나 버릴 때마다 행복도가 조금 더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꼭 기구를 타고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버릴 때마다 기구가 더 높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욕, 출세욕, 명예욕…. 평생 나를 지배해온 욕망들을 하나씩 내던질 때마다 내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다툼이 하나 둘 사라지고 평화가 조용히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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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라”

흔히 남자는 인정을 원하고, 여자는 안정을 원한다고 얘기한다. 내가 그동안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를 추구하며 내 달려온 이면에는 이러한 인정욕구가 자리하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 만큼 내 속의 인정욕구를 뽑아내는 것이야 말로 솟구치는 욕망을 잠재우는 묘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세월을 되돌아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시선에 붙잡혀 살아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기 살기도 바빠 그럴 여유도 없다. 그런데도 남의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며 살아온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배운 또 하나의 진리.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붙잡혀 살지 말라”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라”는 소리일 뿐이다. 물론 좋은 일로 인정받는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인정받으려 애쓴 밑바탕에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 큰 아파트, 더 큰 차,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돈을 원하는 마음속에는 늘 비교의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열등감 아니면 교만으로 나타났다. 이 둘 다 치명적인 죄라 할 수 있다.

일이 잘 안 돼 힘들 때면 동창회 같은 모임에 나가기가 싫었다. 친인척이나 친구들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 열등감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이 좀 풀리면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내 말 속에 자랑이 섞여 있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내려 보려는 교만이 내 속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들고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니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만 내려놓아도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제 나는 나에게 인정받으려 애써온 것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동안 나를 옥죄고 있던 쇠사슬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다. 인정욕구를 뽑아 낸 자리에 평화와 자유가 찾아든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요즘 나의 삶에는 감사가 넘쳐난다. 혼자서 중얼중얼 감사를 표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살아온 게 감사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감사하다. 내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해서 감사하기도 하지만, 내가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하다 보니 내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해짐을 느낀다. 삶에 결핍이 없어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감사하니 삶의 결핍이 더 이상 결핍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은 일터에 다녀오면서 항상 하루를 잘 살아낸데 대해 감사한다. 자책하거나 후회하는 날이 많았던 전반전의 직장생활과 대비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이 가르침을 황금률(golden rule)로 일컫는다. 요즘 내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진리다. 먼저 가정생활에 적용한다. 아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면 된다. 그래서 요즘엔 아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나의 호불호를 떠나 기꺼이 하고자 노력한다. 그리하면 내가 준 것에 몇 배를 더해 되돌려 받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은 경우를 자주 본다. 아침에 가족들 가운데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식사를 준비한다. 이것이 아내를 기쁘게 하고, 나에게 행복이 되어 되돌아온다. 요즘 아내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당신 음식점 해도 되겠네요” “살림꾼 다 되었네요” 그렇다. 인생 별게 있겠는가. 이것이 행복이다. 내 마음을 낮추니 상대가 기뻐하고, 나에게 행복이 더해진다. 이제는 이 진리의 적용대상을 조금씩 넓혀 가면 된다.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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