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 하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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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혼자서 발악을 하더라도 만들어지지 않는 게 인연이다.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대상이 참여해야 형성된다. 여기에 일종의 우연적 요소와 정성, 노력, 그리고 시간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인연이 될 대상의 주변을 뱅뱅 돌지 않아도 ‘관계’라는 틀 안에 안전하게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연에 이러한 조건들이 다 충족되는 경우는 드물다.

인연의 필요조건으로는 단연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꼽겠다. 인연(因緣)이란 어떤 사람 혹은 대상과 맺어지는 ‘관계’로 정의된다. 혼자서만 대상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한들 대상이 나를 바라봐주지 않으면 관계로의 진입이 불가하다. 그건 그저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규정될 뿐이다. 짝사랑 뒤엔 ‘관계’라는 단어가 붙을 수 없다. 상대방에게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그 상태로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짝사랑을 ‘하면’ 안 된다. 짝사랑을 철저하게 ‘숨겨야’한다. 그래서 짝사랑은 애석한 것이다.

인연의 충분조건으로는 우연적 요소, 정성, 노력, 시간이다. 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 우연적 요소인 직관(Feel)이다. 상대방에게서 사랑이든 우정이든 상관없이 뭔가 알딸딸한 이끌림을 느껴야 한다. 알딸딸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성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강렬한 어떤 기분 탓이다. 오죽하면 이런 이끌림을 흔히들 ‘신기’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겠는가. 두 번째 우연적 요소는 말 그대로 우연적 상황을 뜻한다. 만나지 않을 법한 곳에서 만났다든가, 나만의 생각 혹은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했다든가, 하는 타이밍과 관련된 것들. 적재적소에 잘 배치된 타이밍이 겹겹이 쌓이면 Feel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고 견고해지고 용기로 작용한다.

또 다른 충분조건인 정성과 노력, 시간 역시 중요하다. 상대방과 오로지 직관만으로 신뢰가 쌓였다면―직관과 신뢰란 말이 같이 사용되는 건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이끌림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믿음을 준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이젠 만남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인연의 마지막 조건은 만남의 조건과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다. 만나기 위해서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수고로움을 감당하고서라도 상대방과 면 대 면으로 접촉하는 건 의미가 있다. 만남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의미는 더 커진다. 드디어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대화를 하고, 감정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는 패턴이 잘 맞았단 뜻이다.

때에 따라서 몇 가지 충분조건들이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인연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우연적 요소 없이 정성과 노력과 시간으로도 충분히 관계가 맺어질 수 있다. 필요에 의해서 몇 번 만나다보니 인연이 되어있더라, 라는 말도 종종 하지 않는가. 반대로 정성, 노력, 시간 없이 단순 우연적 요소만으로도 인연이 될 수 있다. 끌림은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로맨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쉽게 말하자면, ‘어쩌다 마주친 그대’랄까.

만약 인연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면, 위의 요소들을 모두 충족했을지도 모른단 얘기다. 그 지름길 위에 있다는 것조차 모를 수도 있고. 빙 둘러서 가든 다이렉트로 가든, 인연이 소중하다는 것엔 변함이 없지만. 

이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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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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